‘35년 마음 빚’ 천안함 희생자에 갚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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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 도봉구 창동에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숙자(74·가명) 할머니는 “천안함 순직 장병들을 위해 돈을 보내고 싶다”고 입을 열었다. 김 할머니는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숨진 장병 소식을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팠고 옛날 일도 생각이 나서 적은 금액이라도 기부하고 싶다”고 말을 이어갔다. 1975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여관을 운영하던 김씨는 방을 청소하다 젊은 군인이 머물던 이불 아래에서 1000원짜리 지폐 25장을 발견했다. 당시 여관비는 일박에 5000원. 군인이 남기고 간 현금은 5박을 할 수 있는 여관비와 맞먹는 돈이었다. 그는 군인이 나중에 돈을 찾으러 올 거라는 생각에 돈을 보관했다. 하지만 돈을 두고 간 군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김씨는 결국 군인이 놓고 간 2만5000원을 생활비에 보태 썼다. 김씨는 “35년 동안 쓰지 말아야 할 돈을 썼다는 미안함이 가슴에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6일 천안함 침몰로 해군 46명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35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숨진 장병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 김 할머니는 가족 몰래 한 달간 파출부 일을 시작했다. 그는 일을 하면서 받은 월급 50만원을 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김 할머니는 “그때 군인이 두고 간 2만5000원은 지금 가치로 따지면 큰 액수였다”며 “그 군인에게 남아 있는 마음의 빚을 갚으려고 천안함 사건으로 숨진 장병들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금을 놓고 간) 육군이나 해군이나 모두 똑같은 군인이고 적은 액수지만 내 마음만은 35년 전 여관을 찾았던 군인에게 꼭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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