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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응징 ‘시효’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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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보충대 연병장에서는 빨간 제복을 입은 군악대가 군가와 ‘이등병의 편지’ 같은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4월 하순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우산살조차 마구 꺾이고 뒤집히는 날씨 탓에 결국 공식 입영식은 취소됐다. 입영 장정들은 가족과 한 차례씩 더 포옹한 뒤 헌병들이 만들어 놓은 경계선을 넘어 ‘군대’로 들어갔다. 돌아서는 그들의 어머니·애인들은 벌써 눈시울이 벌게져 있었다. 주차장에 가득한 승용차들이 남은 가족을 태우고 부대를 빠져나가는 데는 한 시간 이상이나 걸렸다. 그러나 무언의 공감대 덕분일까. 아무도 답답하다는 경적을 울리지 않았고, 누가 끼어들든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어제 합동영결식을 치른 천안함 46용사들도 제각기 이런 풍경을 거쳐 가족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입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졸지에 순국·산화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들 입대 후 밥 세끼 챙겨 먹으며 잘 지내고 있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지금은 육군 병장인 큰아이 입대 때도 그랬다. 마침 어제 ‘국가 애도의 날’을 끝으로 천안함 사건 애도 기간도 끝났다. 이번 일요일에는 한동안 TV 화면에서 사라졌던 ‘개그 콘서트’가 다시 방영된다고 한다. 뉴스를 마다하고 채널을 고정했던 프로그램이다. 되도록 챙겨볼 작정이다.

한 가지, 딱 한 가지만 꼭 기억하고 지켜볼 것이다. ‘천안함 이전’과 ‘천안함 이후’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주시할 것이다. 나는 3주 전 이 칼럼에서 우리가 ‘냄비’가 되지 말고 ‘무쇠 가마솥’이 되자고 호소했다. 천안함 사건은 우리 국민이 얼마나 끈질기고 철저한지 증명하는 시험대다. 어제 영결식은 천안함의 비극이 누구의 소행인지 밝혀내고 기어코 응징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북한의 범죄적 도발로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 많지만, 그렇다고 100%라고 단정하지는 않겠다. 섣부른 단정으로 우리 입지가 거꾸로 좁아질 수도 있다. 한편으로 바다에서 증거물을 찾아내는 작업을 계속 벌이고, 다른 한편으로 장기간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증거가 나오지 않는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군(軍)이든 국정원이든, 각 기관 합동이든 정부 내에 증거추적 전담팀을 만들어 길게는 20년 정도를 각오하고 활동에 착수해야 한다. 조사가 더디면 20년간 배출될 네 명의 대통령은 취임식마다 천안함 진상 규명을 다짐해야 마땅하다. 위성·통신 정보,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어느 집단의 누가 어떤 경로를 거쳐 무엇으로 천안함을 동강냈는지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진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드러나게 돼 있다. 우리 노력하기에 달렸다. 며칠 전 일본은 살인·강도강간치사 등 중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없앴다. 천안함 사건은 단순 살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다. 당연히 조사와 응징에 공소시효는 없다. 우리 국력을 바짝 기울여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응징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유대인 대량학살의 주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16년간 추적한 끝에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붙잡았다. 자국 법정에 세워 사형에 처했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