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운 나쁜 보디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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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1월 20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취임식장에 리처드 위버라는 사나이가 나타났다. 목사인 그는 검정색 코트 차림으로 초청장도 없이 백악관에 들어가 부시와 악수까지 나눴다.

경호팀은 대경실색했다. 조사해 보니 위버는 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 2기 취임식 때도 초청장 없이 나타나 클린턴과 악수를 한 '전과' 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경호망도 통과하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며 "다음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하겠다" 고 장담했다.

77년 지미 카터 대통령 시절에도 해프닝이 있었다.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비서관과 이야기 중인데 웬 남자가 베란다에 나타나 창문을 열더니 "마크 시갈 보좌관을 만나려면 어느 방으로 가야 합니까" 라고 물었다.

카터가 길을 가르쳐 주자 유유히 사라졌다. 남자는 시갈 보좌관을 면회온 자유기고가였으며, 그의 출입증은 대통령 집무실 근처에 얼씬거릴 수 없는 등급이었다.

30년 5월 13일에는 정장을 한 신사가 백악관 정문을 아무 제지도 없이 통과해 후버 대통령이 저녁을 먹고 있던 식당에 들어서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이 미 대통령 경호를 전담하는 계기가 됐다.

경호원이라면 케빈 코스트너와 휘트니 휴스턴이 주연한 영화 '보디가드' 가 떠오른다. '당신을 언제까지나 사랑할래요(I will always love you)' 라는 감미로운 주제곡에 걸맞게 보디가드와 톱가수는 토닥토닥 사랑싸움을 벌이고 뜨거운 정사도 치른다.

그러나 영화속 얘기일 뿐이다. 실제의 경호업무는 백번 잘해도 단 한번 실수하면 그걸로 끝장인 초긴장의 연속이다.

경호원에게는 자기희생.사생활 불개입.비밀엄수 등 몇가지 수칙이 있다. 97년 대통령선거 때 각 후보에 파견된 경호경찰들도 수칙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영 달랐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당시 김대중(金大中)후보측에서 일한 경찰은 17명 전원이 승진한 반면 낙선한 이회창(李會昌)후보측은 17명 중 5명 만이 근무연한 덕분에 겨우 승진했고, 대부분 한직을 떠돌고 있다고 한다.

사설경호원도 아닌 경찰관의 앞날이 공무수행 대상의 정치적 흥망에 좌우되는 것을 보면 역시 한국은 고질적인 연고주의 사회다. 이래서야 내년 대선 때 파견될 경호경찰들도 본업보다 후보지지율에나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겠는가.

노재현 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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