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테러사태에 왜 각국들 금리 내렸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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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미국에서 비행기 자살테러 사건이 터지자 미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일제히 금리를 내렸습니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19일 아침 갑자기 콜금리를 내렸습니다. (중앙은행이 어떤 곳인지는 아래 미국에서 테러사건이 났는데 왜 다른 나라 은행들까지 금리를 내리면서 법석을 떨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미국 테러사건이 전쟁으로 발전할 경우 전세계 경제가 함께 나빠지는 사태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 주 틴틴경제에서 미국 테러가 세계경제, 우리나라 경제를 나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설명해드렸죠.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들은 이자 부담이 주니까 더 많은 돈을 빌려 투자를 하려듭니다. 소비자들도 금리가 낮아지면 금융기관에 돈을 맡기기보다는 소비를 많이 하게 돼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죠.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이같은 효과를 노려 금리를 낮췄답니다. 테러사태로 기업과 소비자들의 심리가 위축돼 경기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입니다.

또 금리를 낮추면 전쟁 위기로 불안해진 주식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보통 금리가 오르면 주가는 내리고 금리가 내리면 주가는 올라간다고 합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이 이자로 내는 돈이 줄어들어 이익을 많이 낼 수 있고,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면서 장사가 잘 될 것입니다. 기업이 장사를 잘하고 이익을 많이 내면 기업의 가치를 반영하는 주가도 그만큼 오르지 않겠습니까.

하나 더 있습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은행예금 이자나 회사채 등 채권을 사서 얻는 이익이 줄게 되죠. 그래서 조금이라도 많은 이익을 내려고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돈이 늘어날 것입니다. 돈이 증권시장으로 몰리고 주식을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면 주가가 오를 수밖에 없겠죠.

사실 이번에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서둘러 금리를 낮춘 가장 큰 목적은 주가가 폭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가가 너무 떨어지면 기업들은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만큼 기업들의 투자도 줄어들게 됩니다. 또 주식에 투자했던 일반인들도 주가가 낮아져 손해를 보게 되면 소비를 줄이겠죠.

결국 주가 하락→소비 및 투자 감소→기업들의 실적 악화→주가 하락의 악순환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럴 때 금리를 적절하게 낮춰 경기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예방주사' 를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1987년 10월 19일 미국 주식시장은 월요일에 주가가 대폭락한 이른바 '블랙 먼데이' 사태를 겪었습니다. 당시 주가는 하루 만에 22%나 떨어졌고 기업들의 주식발행 규모는 10여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때에도 미국 중앙은행은 즉시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추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같은 중앙은행의 조치로 다행히 증권회사 중 한 군데도 파산하지 않았고, 주가도 얼마 가지 않아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문제는 금리를 낮춘다고 반드시 경기가 회복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전쟁 등에 대한 불안감이 지나치면 아무리 금리를 낮춰도 기업과 사람들이 설비투자를 꺼리고 소비를 줄이게 됩니다.

또 은행에 오랫동안 돈을 넣기 보다는 되도록 현금이나 금같이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자산으로 보유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시중자금이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단기예금 형태로 금융기관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이를 자금의 단기 부동화(浮動化)현상이라고 부르죠.

이렇게 되면 돈을 아무리 풀어도 경기가 살아나는 효과는 기대하기 힘듭니다. 사람들은 현금만을 가지려고 하며 금리를 더 낮출 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죠.

이처럼 돈이 시중에 풍부한 데도 경기 침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전문적인 용어로는 '유동성(流動性)함정' 이라고 표현합니다.

유동성, 즉 돈이 많이 풀리긴 했는데, 함정에 빠져버려 실제 시중에 도는 돈은 많지 않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금리를 거의 '제로(0)' 상태로 낮췄는데도 소비와 투자가 늘지 않아 경제가 10년째 장기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가 유동성 함정에 빠진 상태라고 말합니다.

금리인하 효과가 안먹히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전쟁 등으로 경제가 당분간 회복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금리가 조금 낮아졌다고 해서 빚을 끌어 투자를 할 기업은 별로 없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을 맞지 않으려면 금리를 낮추는 것외에 생존 가능성이 작은 기업들은 원칙에 따라 정리해야 하며 정부정책이 투명해져 국민과 기업들의 신뢰를 얻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일부에선 이번 테러사태로 1930년대 대공황이 다시 오는 게 아니냐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앞으로 경기를 안좋게 보면 실제로 상황이 나빠지게 됩니다.

경제란 심리적 요인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래서 경제가 어려울 때일수록 정부.기업.국민 모두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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