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퇴계전' 예술종합학교서 창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어린 황이 걸어간다. 서당으로 걸어간다. 천자문 옆에 끼고 군자의 풍모로 걸어간다…. "

지난 22일 밤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선 느닷없는 판소리가 경내를 울렸다.

낯선 소리틀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참석자들은 중모리를 거쳐 자진모리로 접어들면서 가락이 더욱 빨라지자 노랫말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행장(行狀)에 귀를 기울이며 흥겨운 가락 속으로 빠져들었다.

올해로 탄생 5백주년을 맞는 조선시대 유학자 퇴계 이황(李滉)선생이 판소리로 다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은 올 초부터 퇴계 판소리 창작에 들어가 이날 첫 발표회를 열었다.

다섯마당으로 구성된 퇴계 판소리는 유학자를 그린 최초의 판소리로 '성인의 도를 세상에 울린다' 는 뜻의 '금성옥진(金聲玉振)' 으로 명명됐다. 완창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사설은 청년유도회 부회장인 박재희 박사가 짓고, 작창은 국립창극단 단장을 지낸 무형문화재 안숙선(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가 맡았다. 이날 발표회 소리도 안씨가 나섰다.

첫째 마당 '어약우연(魚躍于淵.물고기가 연못에 뛴다)' 은 홀어머니의 지극정성을 다루고, 둘째 마당 '계천입극(繼天立極.하늘의 뜻을 이어 표준을 세우다)' 에선 벼슬길에 나서는 퇴계를 노래한 뒤 '금성옥진' '퇴도만은(退陶晩隱.날개를 접고 도산으로)' 으로 이어져 다섯째 마당 '향원익청(香遠益淸.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니)' 에서 퇴계의 죽음을 그렸다. 이번 발표회엔 완창 CD도 선보였다.

참석자들은 "그동안 어렵게만 여겨졌던 퇴계사상이 재미나는 판소리를 통해 쉽게 와닿았다" 고 말했다.

안동=송의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