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오노레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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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름난 변호사를 처음 찾아간 손님이 물었다.

"사례를 어떻게 하면 될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그러죠. 저는 질문 세 개에 보통 2백달러를 받습니다. "

"좀 비싼 것 아닙니까"

"예, 좀 그런 편이죠. 그런데 손님, 세번째 질문은 뭡니까. "

돈만 밝히는 고약한 변호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농담의 단골 메뉴다. 미국에는 변호사만을 소재로 한 유머집이 따로 있을 정도다. 그중에는 이런 농담도 있다.

의사와 변호사가 나란히 칵테일 파티에 참석했다. 손님 한명이 의사에게 다가와 위궤양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어쩌면 좋으냐며 조언을 구했다. 의사는 몇마디 해주고 나서 변호사에게 물었다.

"사교행위 도중 자문에 응했을 때는 보통 어떻게 처리합니까. "

"당연히 비용을 청구해야지요. "

다음날 의사가 위궤양 환자에게 50달러짜리 청구서를 보내고 났더니 변호사가 보낸 1백달러짜리 청구서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변호사나 의사가 의뢰인이나 환자로부터 받는 수임료나 진료비를 프랑스에서는 '오노레르(honoraires)' 라고 한다. 명예직에게 주는 사례라는 의미다. 변호사나 의사에 대한 존경심이 바탕에 깔려 있다.

원래 오노레르는 돈을 받는 쪽에서 먼저 청구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변호사나 의사처럼 명예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의 도움을 받은 사람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고마움을 스스로 성의껏 표시할 뿐이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변호사는 무보수 명예직이었다.

법정에서 말로써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 사람은 인사말만 하고 훨씬 말을 잘하는 유능한 이웃이나 친구에게 변론을 맡겼다.

영국 속담에 훌륭한 변호사는 나쁜 이웃이란 말이 있다. 변호사 한명 못먹여 살리는 가난한 마을도 어른 두명은 먹여살릴 수 있다는 미국 조크도 있다. 변호사가 법률지식을 토대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보수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변호사는 돈과 함께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피의자를 위해 후배 검사에게 전화 한 통 해주고 1억원을 받았다는 전직 검찰총장.법무장관 출신 변호사의 얘기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다.

힘있는 사람들에게 뿌려진 수십억원의 로비자금에 비하면 '새발의 피'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변호사의 명예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변호사에는 두 부류가 있다. 법을 아는 변호사와 판.검사를 아는 변호사" 라는 농담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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