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히트] '아이 러브 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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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위클리 히트' 는 지난 1주일간 TV.영화.만화.가요 등 대중문화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프로그램이나 인물, 대사 등을 선정해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는 난입니다. 많은 관심바랍니다.

"여보 사랑해.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아. 난 살 수 없을 것 같애. 여보, 사랑해. 애들 잘 부탁해. "

"엄마, 우리 납치 당했어. 엄마, 사랑해!사랑해!사랑해!"

"난 아무래도 못 빠져 나갈 것 같아. 넌 정말 좋은 친구였어. 사랑해. "

뉴욕이 테러 당한 지난 11일 이후 세계의 눈은 온통 미국에 쏠렸다.

납치 여객기와 빌딩에 갇힌 이들이 가족, 친구에게 보낸 지상에서의 마지막 메시지는 무고한 인명을 볼모로 한 테러가 얼마나 잔혹한 행위인지를 절절히 웅변한다. 화석처럼 남겨진 희생자들의 메시지 '아이 러브 유' . 거기에 담긴 애절함은 이번 주 방송 매체를 타면서 시청자들의 가슴을 때렸다.

19일 KBS '시사터치 코미디파일' 에서 백지연씨는 그들이 전한 사랑만큼 이 세상을, 마음의 상처를 보듬자는 멘트로 프로그램을 끝맺었다. 라디오에서도 '아이 러브 유' 는 이어졌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현대인들이 얼마나 전자 미디어의 정글에 포획돼 있는지를 실감케 했다.

핸드폰이나 이메일로 마지막 인사를 남길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테러 장면이 생중계됨으로써 그 충격이 지구촌의 동시적인 경험이 될 수 있게 한 것도 CNN 같은 방송의 위력에서 나왔다. 반면 이번 사건은 전자 미디어가 가진 어두운 면을 뚜렷하게 부각시키기도 했다.

10년전 걸프전 당시 CNN은 첨단 무기가 이라크를 공습하는 장면을 마치 전자 게임 보여주듯 생중계했다. 적어도 전자 미디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미국은 이번에 톡톡히 그 보복을 당한 셈이다.

'적의 땅' 을 공격할 때는 게임을 보듯 무덤덤한 그들이었지만 자국의 피습 장면 앞에서는 말을 잊고 허둥대며 어쩔 줄 몰라하는 형국이었다. 뉴욕 테러 소식에 아랍의 일부 지역에서 축포를 쏘며 환영했다는 '이해 못할' 행동의 저변에는 이 같은 과거의 기억이 침전돼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전자시스팀으로 무장했다 한들 그 과정에서 민간인의 피해가 없었겠는가. (16일 '시사메거진 2580' 에서는 걸프전 당시 미국이 화장품 공장을 화약공장으로 오인해 폭격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랍권에서의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너무 무지하거나 무심했다. 그건 우리의 눈과 귀에 닿는 소식들이 서구 미디어의 시각으로 덧칠되고 굴절돼 전해지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MBC가 창사40주년 특별기획으로 방송중인 '이슬람' 시리즈는 우리의 편향된 시각을 교정하는 데 작은 기여를 하고 있다.

이제 우리 미디어도 타자의 문명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 그럴 때 '아이 러브 유' 라는 메시지는 가족, 서구라는 편협한 울타리를 너머 지구촌의 모토로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또 미디어도 증오를 확대 재생산 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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