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 "애국… 애국" 성조기 없어 못팔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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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테러 참사 후 재개장한 지 사흘째를 맞고 있는 뉴욕 증시엔 '애국 장세' 가 펼쳐지고 있다. 가장 자본주의적이라고 하는 주식투자도 이번과 같은 국가적 위기상황에서는 개인의 잇속보다 국익이 앞서야 한다는 분위기가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 투자자는 "개인이든 기관이든 이 판에 주식을 팔아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는 자는 지탄받을 것" 이라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도 증시 문을 다시 연 지난 17일 주가 하락폭(7.13%)이 예상(10% 정도)보다 작았던 것은 애국심이 넘친 개인들이 '사자' 주문을 쏟아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 국민은 인터넷을 통해 이런 캠페인을 확산시켜 가고 있다. 월가를 대표하는 투자가인 워런 버핏이나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꼽히는 잭 웰치 전 GE 회장 등이 이 캠페인에 동참한 것도 주효했다.

애국의 물결은 전국적이다. 차량과 가정집이 모두 성조기를 내거는 바람에 가게에는 성조기가 동이 났다. 가슴에는 다들 애도 리본을 달고 다닌다. 양초도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희생자와 미국의 앞날을 위한 기도행사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을 돕기 위한 성금도 미 전역에서 5천5백만달러나 모인 것으로 중간 집계됐다. 뉴욕 한인사회에서도 닷새 만에 1백만달러를 모았다. 뉴욕의 복구현장에는 자원봉사자가 쇄도해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이 "더 이상 필요없다" 며 말릴 정도다.

미국 전역에 1천1백70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 중인 클리어채널사는 산하 방송채널에 대참사를 당한 사회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노래 1백50곡의 방송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방송자제 목록엔 록밴드 사운드가든의 '세상을 날려버려' 처럼 테러참사를 연상시키는 가사가 담긴 노래와 루이 암스트롱의 '아름다운 세상' 과 같이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분위기에 맞지 않는 곡들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 존 레넌의 '이매진' , 사이먼과 가펑클의 '험한 세상의 다리 되어' 등도 슬픔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자제곡 목록에 포함됐다.

뉴욕=신중돈 특파원,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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