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명의 충돌' 저자 헌팅턴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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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번 미국 테러사태를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 간의 충돌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에 1996년 발간된 미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 교수의 『문명의 충돌』이 전세계에서 다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헌팅턴 교수는 독일 디 차이트지와의 회견에서 "이번 테러는 결코 '문명의 충돌' 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광신도 집단의 범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명의 충돌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이슬람 국가들과의 협력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요제프 요페 디 차이트지 공동 발행인이 헌팅턴 교수와 인터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 이번 대참사로 귀하가 93년 포린 어페어스와 96년 동명(同名)의 저서에서 예언한 '문명의 충돌' 은 시작된 것인가.

"이번 테러는 무엇보다도 전세계 문명사회, 나아가 문명 그 자체에 대한 야만인들의 비열한 공격이다. 중요한 것은 이 범죄가 아직 문명의 충돌을 야기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테러리즘에 대한 이슬람 국가와 국민들의 자세가 관건인데, 지금까지 많은 이슬람 국가들이 테러에 대한 혐오감과 미국에 대한 동정을 표시했다. 물론 길거리에서는 이번 공격에 환호하기도 했지만. "

- 그럼에도 문명의 충돌이 아닌가.

"아니다. 이슬람 세계가 분열돼 있기 때문이다. 진짜 문명의 충돌을 막느냐, 못 막느냐는 이슬람 국가들이 테러를 퇴치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

- 이번 테러의 목표는 무엇이었나.

"미국의 상징이었다. 세계무역센터는 자본주의의 상징이고, 국방부는 미 군사력의 상징이다. "

- 범인들이 한 국가를 공격한 것인가, 아니면 한 문화를 공격한 것인가.

"둘 다다. 그들은 미국을 자신들이 증오하는 서구문명의 화신으로 보고 있으며, 동시에 세계 최강의 국가로 간주한다. "

- 전략문제 전문가로서 테러 방지를 위한 올바른 전략을 조언한다면.

"첫째가 정보업무 강화다. 미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인적 정보(휴먼 인텔리전스)' 와 현장 조사를 강화해야 한다. 또 이번 파키스탄과의 협력처럼 외국 정보기관과의 협력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정보 업무는 예방에 주력해야 한다. "

- 종교적 광신도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

"물론 찾아내 제거해야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광범위하게 분산돼 있는 데다 그들의 목표도 단순치 않아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

- 미국이나 서구가 이에 대한 준비가 돼 있나.

"천천히 준비하고 있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미군을 냉전시대의 의식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과감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군부란 언제나 보수적이다. 변화를 싫어한다. 미국과 유럽의 시민들도 그들이 위험하고도 불가측한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

- 미국이 이번 테러와의 전쟁을 혼자 수행해 낼 수 있을까.

"전혀 불가능하다. 동맹국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한 이슬람 국가들까지 포함하는 대(對)테러 공동전선이 필요하다. 얘기가 처음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즉, 이슬람 국가들이 이번 전쟁을 수수방관하거나 심지어 범죄자들과 연대한다면 실제로 문명의 충돌이 야기될 위험이 커진다. 이는 단순히 악의 세력에 대한 문명사회의 전쟁 차원이 아니다. "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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