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 적다" 미국 언론·지식인 공격 신중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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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테러 참사를 당한 미 국민들은 테러 조직에 대한 응징과 보복 공격을 한 목소리로 지지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노선에 대한 자성론과 군사행동 돌입에 대한 신중론도 지식인과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자성론은 미국이 국익에만 집착한 나머지 국제 여론과 협력을 외면한 외교노선을 펼치는 바람에 각국의 반감을 불러일으켰고 고립을 자초했다는 의견이다.

LA타임스는 13일자에 게재한 분석 기사에서 이같은 여론을 전했다. 이 기사는 이번 테러 참사를 계기로 지금까지 미국이 보여준 독선과 이중잣대에 대한 비판과 이같은 문제점들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이번 테러 참사를 '인과응보' 로 보고 있다면서 일부 팔레스타인인들이 테러 발생 직후 춤을 추며 환호한 사실을 예로 들었다. 또 이같은 현상은 "냉전시대의 분쟁을 통해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힘에 대한 경계심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 으로 해석했다.

이 신문은 이어 "유럽의 수도에서 남미의 코코아 농장, 동남아 의회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거만하고 자국 이익에만 집착하는 것으로 비춰질 소지가 적지 않았다" 고 지적하면서 비판론자들의 의견을 인용했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현대자동차공장에서 일하는 바구스 프라세트요는 "(이번 테러가)미국이 너무 거만해지지 말라는 충격요법과 같다" 고 말했다.

또 한 미국 외교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TV에 나와 테러범과 비호자들을 잡겠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을 것임을 의미한다" 며 "우리는 정당한 이유를 지니고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우리의 정책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우리의 오만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아 왔다" 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도 12일자 분석기사에서 "미국은 테러 공격에 대한 강력 대응을 논의하기에 앞서 뿌리 깊은 반미감정을 먼저 되짚어 봐야 하며 지금 필요한 것은 복수가 아니라 반미감정을 가진 세력과의 화해" 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여론이 들끓고 있는 보복 공격에 대한 신중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감정이 앞선 군사공격이 실효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고 자칫하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14일자 뉴욕 타임스에 게재한 칼럼에서 "이번 테러사건은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 내의 충돌" 이라면서 "테러범들은 반드시 색출되고 제거돼야 하지만 이슬람권 내의 친구들을 저버리는 행위로 이어져선 안된다" 고 주장했다.

LA타임스는 14일자 '올바른 대응' 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테러범에 대한 군사공격은 테러행위의 근원을 뿌리뽑는 방향으로 이뤄져야지 아무 죄없는 민간인을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고 주장했다.

이같은 자성론과 신중론은 강력한 응징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묻혀 당장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여론이 미국의 지식인들 사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이상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강경론과 일방주의로만 일관해온 미국의 외교노선에도 어느 정도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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