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수환추기경의 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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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이 자신의 사제 서품 50주년 회견에서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할 어려운 때 나라가 자꾸만 흩어지고 대립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고 개탄한 것은 국론 분열의 심각성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특히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 지도자들, 제발 싸우지 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는 金추기경의 질타 섞인 주문은 미국 내 테러참상 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은 우리 정치의 일그러진 모습을 실감케 해준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언론개혁의 필요는 있지만 지금 방법이 좋은 결과는 내지 못하는 것 같다" 고 평가한 부분은 여권에서 귀담아 들어야 할 우리 사회 원로의 고언(苦言)이다.

언론사 세무조사, 8.15평양축전으로 연쇄 촉발된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은 치유되기보다 더욱 곪아가고 있다. 편가르기의 한복판에 있는 여야는 그것을 푸는 해법을 내놓기보다 거꾸로 정쟁을 확대해 왔다.

여기에다 DJP결별로 정국의 불안정성은 높아가고, 여론의 기대와 거리가 먼 당.정.청의 인사개편은 국정 불신을 더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공동정권 붕괴에 따른 반사 이익을 얻는 데 주력할 뿐 의석수 제1당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말뿐인 영수회담이 아니다. 정치 지도자들이 진지하게 만나 협력하고 양보하는 거다" 라는 金추기경의 지적은 정치권의 초당적인 자세전환이 시급함을 호소한 것이다.

테러 사태로 경제 위기감과 안전에 대한 불안심리가 커지고, 국정운영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정치권의 책임은 그만큼 중대하다.

국론 분열의 여러 상황과 요소를 정리.조정하는 기능으로서 정치가 새롭게 작동해야 한다. 국가의 위기관리시스템을 재점검하고, 국론을 통합하는 데 정치권이 앞장서야 한다.

그것이 김대중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을 상대하는 정치' ,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강조해온 '국민을 우선하는 정치' 의 핵심 실천사항이다. 두 사람이 영수회담 테이블에 서둘러 나와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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