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키신저 前국무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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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1일 있었던 항공기 돌진 테러는 치밀한 계획과 체계화된 조직, 풍부한 자금력, 안정적인 근거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만약 특정한 근거지 없이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집단이라면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기 힘들었을 뿐 아니라 계획을 세우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다소 희생을 치르더라도 테러를 직접 실행한 사람들에게 보복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항공기 돌진 테러는 미국 영토에 대한 직접 공격이다.

이는 '자유사회' 라는 우리의 존재 기반과 삶의 방식을 위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경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테러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에 대한 공격이다.

물론 가장 시급한 조치는 부상자들을 돌보고 생존자들을 구해내는 것이다. 또 우리 사회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앞으로는 이처럼 일상적인 테러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선 과거 일본의 진주만 공격에 대한 대응처럼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그것은 이번 테러에 책임이 있는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바로 특정한 일부 국가의 수도에 진을 치고 있는 테러집단의 네트워크다. 많은 경우 우리는 테러집단을 보호해주는 국가를 벌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엔 그들과 정상적인 관계에 버금가는 유대를 유지했다.

현 시점에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할지를 말하는 것은 어렵다. 만약 내가 1주일 전에 이번 테러와 같은 공격이 가능한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런저런 논평을 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단순한 치안의 문제로 이런 테러를 다루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대응해야만 한다.

물론 테러집단에 대한 보복공격이 있을 것이고 나는 그것을 열렬히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테러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핵심은 현재 가동되고 있는 테러의 시스템이다. 테러집단들은 전세계 곳곳에 근거지를 두고 조직화돼 있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 테러가 과거 오사마 빈 라덴이 자행했던 방식과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우리는 아직 빈 라덴이 이번 테러를 주도했는지 확증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런 극악한 테러를 할 수 있는 집단을 보호하는 국가는 반드시 응분의 죄값을 지불해야만 한다. 이번 테러에 그들이 직접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번주 또는 다음주에 어떤 방식으로 보복공격을 할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안전을 위협받았다.

따라서 우방들과 최소한의 합의는 해야겠지만 완벽한 의견일치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침착하게,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

정리=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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