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실패를 자산으로 바꾼 턴어라운드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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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그는 자신의 실패담을 거리낌없이 말했다.

“처음엔 말아먹기도 했죠. 실패를 거울 삼아 새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투자를 받으러 벤처캐피털을 찾아가서도 있는 그대로 실패 경험을 털어놓는다고 했다. 미국의 투자자들은 백이면 백,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나”를 물었다고 했다. 그를 ‘실패한 사업가’가 아니라 ‘경험이란 자산을 가진 사업가’로 본다는 것이었다.

새삼 8년 전의 기억을 떠올린 건 3월 16일~4월 23일 본지에 게재한 ‘턴어라운드-위기 딛고 선 기업들’을 취재하면서였다. “곧 깡통 찬다” “글렀다”는 말을 들었다가 부활한 기업·기업인들의 얘기였다.

이들에게 위기는 자신의 사업을 찬찬히 짚어보는 계기가 됐다. 군더더기 사업을 접고 내실을 다졌다. 빡빡한 자금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될 성 부른 미래 사업을 고르고 골라 집중 투자했다. 떠날 사람은 떠났지만, 남은 사람의 결속은 더 탄탄해졌다. 노사가 갈등을 벌일 여유도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턴어라운드한 기업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용 필름 제조 장비를 만드는 주성엔지니어링이 대표적이다. 2001~2003년의 누적적자가 약 1200억원. 같은 기간 매출액의 합(1000억원)보다도 컸다. 그러던 이 회사의 올해 매출은 지난해(1700억원)보다 83% 늘어난 3110억원에 이를 것으로 증권사들은 예상한다. 이 회사 황철주 사장은 “위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주성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담금질을 받아 더 강한 기업이 됐다는 의미다.

다른 턴어라운드 기업들도 더 강해졌다. 실패나 위기가 소중한 자산이 된 셈이다. 한국 경제가 금융위기를 견뎌낼 정도로 튼튼해진 것도 외환위기의 경험을 살린 덕 아닌가.

지금도 어디선가 턴어라운드를 위해 밤을 낮 삼아 노력하는 기업들이 있을 터다. 이들에게 이미 턴어라운드한 기업들을 보며 ‘힘 내시라’며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지막으로 은행들에도 한마디. 턴어라운드의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당장의 이해관계를 따지며 매몰차게 우산을 걷어가는 일은 자제하길 바란다.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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