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조한승-추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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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행운의 여신은 내편" 趙4단 의기충전

총보(1~261)=바둑 한판을 이기려면 크고 작은 수없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 무수한 수읽기와 가슴 두근거리는 전투, 끝없는 대세 판단, 그리고 계산 등으로 목이 메고 눈이 충혈되고 입안이 탄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힘겹게 싸워 승리가 목전까지 다가왔는데, 이젠 손만 뻗으면 승리라는 과일을 딸 수 있는데 이 대목에서 아주 허망한 사고로 승리를 잃는다면 어찌될까. 과연 바둑 둘 맛이 나겠는가.

다시금 머리를 쥐어짜 수읽기를 하고 대세 판단과 계산을 하며 몰두할 기분이 날까. 아무리 유리해도 매번 불안해지지 않을까.

이세돌3단은 이창호9단과의 LG배 결승전에서 이와 비슷하게 승리를 놓쳤고 그 뒤로 승률이 크게 떨어졌다. 이 판의 추쥔6단도 막판 207의 손찌검으로 반집 이길 수 있는 바둑을 반집 지고 만 뒤 아마도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반대로 드라마틱하게 승리를 챙긴 쪽에선 점점 자신감이 붙어(운명이 내 편이란 안도감 탓일까)승률이 점점 높아진다. 승부란 묘한 것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엔 반드시 '운(運)' 이라는 존재와 함께 정신적인 요소가 개입한다. 중대한 고비에서 승리를 놓쳐버리면 그 상처를 회복하는 데 몇배의 힘이 든다.

趙4단은 이 판을 이겨 세계 32강이 겨루는 세계대회 본선에 진출했다. 어쩌면 그의 낙관적인 정신이 반집승을 이끌어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젊은 프로기사에게 아주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는 이제 정신적으로 세계 최강자들 대열에 들어섰고 그로써 바둑도 한 단계 높아지게 될 것이다(152〓140, 218〓96, 250〓141, 259〓90, 260〓193, 261〓24).261수 끝, 백 반집승.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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