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표피적 보도만으로는 북한 알지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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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거의 군사 전문가 수준이다. 어뢰와 기뢰, 폭뢰의 차이는 물론이고 이젠 잠수함과 잠수정이 어떻게 다른지도 안다. 하긴 겨울올림픽 때는 피겨스케이팅 전문가가 되어 트리플 악셀과 러츠, 토루프를 이야기했다. 때마다 항상 그랬다. 언젠가는 쇼트트랙의 기술들을 구분했고, 그전에는 줄기세포의 종류를 줄줄 외웠다. 언론의 보도 경향 탓인가, 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사건 때마다 기술적 분석에는 상당량의 지면과 시간을 할애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정책적 분석에는 그만큼 소홀하다.

“정말 몰라요?” 언론 보도대로 버블제트에 절단면까지를 거론한 후 재차 묻는다. “글쎄요, 심증은 강하지만. 대통령 말씀대로 증거를 기다려봐야겠죠.” 답답하다는 눈길이 돌아온다. 이미 보도된 내용이라 새롭지 않기 때문이리라.

“사실 저는 북한 경제가 전공이거든요.” 찜찜해서 말을 붙이면, 또 묻는다. “화폐개혁 책임자가 총살당했다는 건 사실이에요?” 더 이상 가만있기 뭐해서, 답을 한다.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요”라고 첫 문장을 시작하면서.

나는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이 정말 총살당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설령 총살당했다고 해도 화폐개혁의 실패 책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이 아무리 엉망이고 한심한 나라라고 하더라도 수년간 준비한 정책의 성패 여부를 불과 한 달 만에 판단했을 것이라고는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총살이 사실이라면, 다른 죄목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횡령, 뇌물 등 북한 고위층이 흔히 처벌되는 죄목 말이다.

화폐개혁이 실패라고도 나는 판단하지 않는다. 물론 북한의 현실로 볼 때 장기적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실패라고 단정할 근거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번 북한의 화폐개혁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인플레이션을 해결한다는 목적 이외에도 신흥 부유층을 몰락시킴으로써 싹트기 시작하는 자본주의를 사전에 척결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시장을 인위적으로 없애고 계획경제로 복귀하겠다는 목적도 있었고, 새로운 화폐로 교환함으로써 발권력(發券力)을 통한 재정확충이라는 목적도 있었다. 당연히 이들을 바탕으로 후계체제를 공고히 하겠다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 이외의 목적은 대체로 성공하고 있고, 따라서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화폐개혁이 실패라고 단정짓기는 이르다. 사실 실패의 증거로 언론에서 거론하는 인플레이션조차 설득력이 크지 않다. 화폐개혁으로 임금이 100배 올랐으므로 물가가 100배 이상 올라야 실패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아직은 그런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표적 품목인 쌀값의 경우 화폐개혁 이후 50배가량 올랐다가 이제는 20배 정도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만약 언론 보도대로 총살이 사실일 만큼 화폐개혁이 실시된 지 한 달 만에 실패했다면, 북한 지도부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할 수밖에 없다.

우선은 김정일의 판단능력의 문제다. 화폐개혁은 김정일의 재가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다. 그런데 실시하자마자 실패했다면, 김정일은 현재 북한의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부의 정책결정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 어느 라인에서는 화폐개혁을 주장해도 현시점에서는 바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보고가 어느 라인에선가는 제기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주도했다고 해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설익은 정책이 시행되어도 아무도, 심지어 김정일조차 제어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저 가만히 듣는다. 반론도 않는다. 언론에 나오지 않아서인가, 라고 나는 짐작한다. 물론 나의 추론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언론의 일차원적인 보도가 정작 핵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만들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화폐개혁의 실패 여부보다는 그 원인이 더욱 중요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의 대북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데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북한과 의사결정 체계가 고장 난 북한을 다루는 방안은 달라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언론이 보다 분석적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사건일수록 더욱더.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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