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정치에 묻혀버린 'IMF 졸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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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사회학의 상징적 상호작용 이론에 의하면 흔히 '진실' 이라고 불리는 사회적 사실은 사람들간의 말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에 기본적 화두와 대화 방향을 제공하는 것이 신문이다. 더 나아가, 현대 사회에서는 "진실은 신문을 비롯한 미디어에 의하여 형성된다" 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신문이 한 사안을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며, 보도하느냐 않느냐에 따라서도 사회적 진실은 아주 다르게 형성된다.

지난 주 중앙일보의 1면 기사 중 최대의 사회적 사실은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안을 둘러싼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대결이었다.

8.15 방북단 사건에 책임을 지고 林장관이 물러나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JP가 편승한 것이 발단이 됐으며, 이는 그가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 심화한 반 DJ 정서를 등에 업고 내년도 지방선거와 대선을 위해 보수층 텃밭을 다지고자 대통령과의 대결을 시도하는 사건으로 발전했다.

중앙일보는 다른 신문들과 마찬가지로 논조와 기사 선택에서 JP의 언행을 크게 부각했다. 'JP 밀어주기' 라는 인상을 줄 정도였다.

林장관 해임을 줄기차게 요구하는 JP의 목소리를 수요일부터 연일 1면 기사와 관련 해설로 다루었으며, 자민련에서 일고 있는 JP 대망론도 '실패한 DJ 정책과 단계적 결별'등의 기사를 포함해서 세 차례에 걸쳐 자세히 보도하였다. 또한 8월29일자 '햇볕정책이 사는 길' , 8월30일 '햇볕에서 햇빛으로' , 8월31일 '햇볕 유죄가 아니다' 등 사흘간 잇따라 오피니언 면의 칼럼에서 햇볕정책을 다루었는데, 이 역시 林장관의 해임을 요구하는 JP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한 논조를 보였다.

신문들의 이 같은 보도 덕분이었을까. 한 주일을 마감하는 9월1일 토요일자의 '온통 JP판…긴장도' 라는 기사에도 나오듯이 한나라당조차 "JP의 선택은 보수 세력을 확실히 대변하는 것으로, 자신의 대망론이 허상이 아님을 알리는 효과를 낳았다" 라며 그의 세력이 엄청 상승한 것으로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앞에서 언급한 세 칼럼은 햇볕정책 자체에 대해선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햇볕정책을 대신할 정책은 아직 없다. 잘못된 것은 추진 방법에 있다" 거나,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대북정책에 관한 한 포용정책 이외의 다른 선택이 없다" 고 표현했다. 다만, 칼럼 중 하나에서 이러한 식의 평가와 함께 林장관 해임을 주장하는 논리를 편 것은 다소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林장관의 국정원장 시절 행태를 문제 삼은 JP의 발언을 가감 없이 보도한 기사의 경우, 그것이 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의 차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건지, 또 그렇게 했기 때문에 북한의 신뢰를 얻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아닌지 하는 등의 시각이나 주장을 같이 실어주는 균형 감각이 아쉬웠다.

지난 주는 정부가 IMF 관리체제를 조기 졸업했다고 선언한 직후였다. 8월 28일자 중앙포럼 'IMF 3년8개월' 은 좋은 글이었다.

그러나 6.25 이후 최대 난국이라는 IMF 사태의 한 장을 닫는 시점에서 중앙일보가 이 사안에 대해 보인 관심은 다소 미흡했던 듯하다. 가장 큰 문제인 경제가 정치에 묻혀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IMF 환란을 겪게 된 배경을 다시 한 번 심층 분석하고 대책을 다각도로 진단하여 재발 방지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

徐載鎭 <통일 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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