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초대 국가 CTO’ 황창규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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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황 단장은 달랐다. 그는 지식경제부 기자실에 파워포인트로 된 자료를 들고 나타났다. 지경부 담당자들은 급히 프로젝션과 스크린을 마련하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다. “지금까지 한국의 R&D는 선진국 기술을 따라잡는 ‘추격형’이었지만, 앞으로는 시장을 선도하고 시장과 연계된 연구(R&BD) 체계로 개편하겠다.”

그의 취임 일성이었다. 차세대 대형 먹을거리를 발견하기 위해선 창조적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 공정한 평가, 안 되는 연구는 과감히 버리는 경쟁논리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법은 ‘주력산업 간, 주력산업과 정보기술(IT)의 융합’에서 찾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아이폰 쇼크’를 털고 우리의 기술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의욕은 충분히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그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고 험하다. 가장 중요한 것이 공무원 조직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최경환 지경부 장관은 “R&D에 관한 한 공무원들의 모든 권한을 내놓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임명 절차만 봐도 아직 관료주의 냄새가 풍긴다. 당초 그의 임명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검증을 거쳐야 하고, 규정도 새로 고쳐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장관이 임명하게 됐다. 예우도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바뀌었다. 예산권을 쥔 부처에서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그가 다룰 수 있는 예산이 얼마 안 된다는 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경부 소관의 R&D 예산은 연간 4조4000억원인데, 이미 진행 중인 계속사업이 많다. 황 단장이 자신의 구상을 펼치려면 상당 부분을 정리해야 한다. 어디선가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선 그도 “앞으로 중요한 토론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곧 첫 시험대에 오른다. 조만간 구성될 투자관리자(MD) 선정이 그 무대다. 대기업들은 벌써부터 자기 회사 사람이 MD가 되도록 뛰고 있다. 로비가 있을 테고, 압력도 상당할 것이다. 이를 물리치고 누구나 인정할 만한 사람을 앉힐 수 있을지 많은 사람의 눈길이 황 단장에게 쏠리고 있다.

최현철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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