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300만 굶겨 죽인 게 누구냐 … 김정은 그깟 녀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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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잘할 게 뭐냐”=황 전 비서는 김정일 관련 사생활이나 일화를 언급하는 것을 극구 꺼렸다. 그는 워싱턴에서 “나는 김정일 사생활이나 성격 이야기하러 한국에 온 게 아니다. 내가 김정일 욕하면 뭐하겠나. 업적 가지고만 평가하면 된다. 300만을 굶겨 죽인 게 누구냐”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미국 기자들이 김정일과 김정은에 대해 거듭 묻자 몇 차례 질문에 응했다. 후계자로 보이는 정은을 아느냐고 묻자 그는 “그 녀석 만난 적도 없다. 그까짓 녀석이 무슨 소용 있느냐. 김정일 자체를 보면 그보다 못하면 못했지 잘할 게 뭐냐. 미국이 관심 돌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김정일의 통치 스타일과 자신이 관련된 일화도 언급했다. 그는 “김정일은 사람을 꼼짝 못하게 장악하는 수단은 가지고 있다”며 “나는 어릴 때부터 김정일을 알아 특별 대우를 해주는 셈이었는데도 그랬다. 그의 관리의 비결이라면 반대하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처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김정일의 호전성을 알려주는 일화도 언급했다. “언젠가 한 번 김정일이 술파티 중에 참모들에게 ‘요즘 군사분계선이 너무 잠잠해서 재미없다. 좀 분주하게 만들라. 이번에는 어느 초소를 한 번 치고 돌아오라’라고 이야기했다. 다음날 참모들이 계획서를 만들어 가지고 올라가서 김정일이 사인하면 그대로 집행되는 것이다”고 그는 증언했다. 그러나 황 전 비서는 “이 같은 도발은 전쟁을 하지 않고 몸값을 올리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삼엄한 경호=황 전 비서는 워싱턴 체류 동안 미 국가정보국(DNI)의 지휘 아래 한·미 정보당국의 합동 경호를 받았다. 강연장 앞엔 금속탐지기가 등장했고 강연 내내 앞뒤로 경호원이 배치됐다. 그의 강연이 끝난 후에도 참석자들은 황 전 비서가 3대의 검은색 밴 차량으로 현장을 빠져 나갈 때까지 건물 밖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강연을 제외한 모든 워싱턴 일정은 모두 비공개로 이뤄졌다.

◆일본에서도 맹비난=황 전 비서는 워싱턴을 방문한 뒤 귀로에 일본 정부 초청으로 도쿄에 들렀다. 그는 8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독재가 김일성 주석보다 10배는 강하다”며 “북한은 나를 반역자라고 말하지만 (진짜) 반역자는 국민을 굶어 죽게 하고 있는 김정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단념할 가능성에 대해 “절대 없을 것”이라면서 “금방 전쟁을 할 것처럼 위협하고 있지만 핵은 어디까지나 체제 유지의 수단이므로 이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의 경제·재정 운영에 대해 “20%는 김정일이 자유롭게 사용하는 당의 예산이고 50%는 군비며 인민의 생활에 돌아가는 돈은 30%”라며 “괴로운 것은 인민의 생활”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이 후계 경쟁에서 탈락한 이유에 대해서는 “처음엔 (김정남을) 후계자로 하려 했으나 모친인 성혜림이 사망한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인 김정은의 모친인 고영희를 사랑하게 되면서 생각이 바뀐 것 같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한 데 대해서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공작원을 양성하기 위해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황 전 비서는 나카이 히로시(中井洽) 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담당상 등 정부 관계자 및 귀환 납북자와의 면담, 강연 등의 일정을 마치고 8일 한국으로 돌아갔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도쿄= 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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