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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의 유전자를 찾아 (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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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처음으로 지배한 외부 세력은 로마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통치는 했으나 영국의 유전자 풀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로마인들이 별로 이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영국점령으로 무역과 문화, 그리고 기술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기독교를 전파했다. 아서 왕의 성배 이야기도 바로 이러한 이유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영국을 통치는 했으나 이 영국으로 실제 이주해서 산 경우는 별로 없다. 사실 온갖 최고의 문명을 누릴 수 있는 로마가 좋지 왜 낯선 섬나라로 이주해서 살겠는가? 따라서 영국의 유전자 풀에 로마가 영향을 끼친 것은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인, 영국을 지배했으나 유전자는 지배 못해

AD 400년경 로마가 철수한 이후 영국은 권력의 공백이라는 암흑기에 접어 들었다. 따라서 영국은 자연히 외부 세력에 의한 공격에 취약점을 드러내게 됐다. 대신 유럽인들의 물결이 영국 원주민들을 대체하게 되었다.

영국으로 이주한 세 개의 주요 종족이 있었다. 북부 독일의 앵글리아(Anglia, Angeln) 지방으로부터 온 앵글(Angles)족, 독일의 작센 지방에서 온 색슨 족, 그리고 유틀란트 반도로부터 온 주트(Jutes) 족이었다.

얼마나 많은 앵글로색슨이 도착해 정착했고, 또한 원주민들과의 충돌이 얼마나 격렬하게 전개됐는지에 대해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로마 세력의 쇠퇴기에 앵글로색슨 대량 이주

이에 대한 역사적인 출처는 소수의 기록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들 중 대부분은 사건 후에 쓰여 진 것들이다.

예를 들어 6세기의 성직자 길다스(Gildas, 516∼570)는 영국인들과 앵글로색슨인 간의 일부 전쟁에 대해서는 기술하였지만, 확실한 정보는 짧게 요약되어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중세 역사가인 남긴 대표적인 저서가 ‘브리튼의 파괴에 대한 비난의 책(Book of Complaint Touching the Destruction of Britain)’이다. 이 책은 앵글로색슨이 침입하여 영국문화를 붕괴 시킨 사실을 다루었다.

그리고 애드머(Eadmer, 1060∼1124)는 ‘그의 시대의 역사(The history of his own time)’에서 영국 교회사를 다루면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포함시켰는데 편견에 사로잡힌 서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윌리엄(William of Malmesbury, 1096∼1143)은 ‘영국 왕들의 업적(Acts of the English Kings)’에서 색슨인의 침입으로부터 1128년까지의 사건을 다루었고 ‘현대사(Modern History)’에서는 1142년까지 서술하면서 비교적 공평하게 노르만인의 영국 정복 사건을 다루었고 극적 묘사가 훌륭하고 역사적 판단도 날카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앵글로색슨인의 대량 이주는 몇 세기가 흐르면서 원래의 영국인들의 유전자 풀을 희석시켰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유전학은 앵글로색슨인의 침입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 유전학이라는 과학은 주인이 자주 바뀌었던 영국의 복잡한 역사를 설명할 수 있을까?

당시 무려 50만 명의 앵글로색슨이 영국으로 이주

영국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발굴된 고대 앵글로색슨인의 의복용 장신구인 브로치.

2002년 UCL(University London College)대학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서 현재의 영국인들과 고대의 앵글로색슨인 사이를 연결해 주는 증거를 찾았다.

연구팀은 영국의 중부지방에 사는 현대 남자들과, 앵글로색슨인의 고향이라고 생각되는 현재 네덜란드 지방의 프리슬란트(Friesland)에 사는 남자들의 Y 염색체를 비교하였다.

연구는 두 집단 사이의 놀랄만한 유전적 유사성을 발견하였고 ‘대량 이주 사건’이 암흑기에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시 말해서, 대량의 앵글로색슨이 (본토의) 잉글랜드인의 유전자 풀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의 유사성은 웨일스 국경에서 갑자기 멈췄다. 수 천년 간의 공유된 역사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인과 웨일스인 간에 뚜렷한 유전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 연구에서 나타났다.

앵글로색슨인의 광범위한 유전자 확산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러 인구수준을 감안할 때 ‘침략자’ 수가 적어도 50만 명은 됐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 수치는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집단이동이었다. (계속)

김형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