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 주역 키우 삼판 전총리 22년만에 사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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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국제사회에서 반인륜 범죄에 대한 단죄의 목소리가 높아가는 가운데 1975~79년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의 총리로 1백70여만명을 학살한 '킬링 필드' 의 주역 키우 삼판(사진)이 사건발생 후 22년 만에 자신의 과오를 사과했다.

키우 삼판은 지난 16일 프놈펜에서 7쪽 분량의 공개 서한을 통해 "크메르루주 정권하에서 가족과 친지를 잃은 이들에게 사과한다" 고 밝혔다.

키우 삼판의 갑작스런 사과는 킬링필드 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죄가 임박한 데 따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최근 캄보디아의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은 국제사회의 끈질긴 압력에 밀려 크메르루주 정권 지도자들의 범죄행위를 심판할 국제법정 설치를 허용하는 법안을 공표했다. 또 훈센 총리도 지난 14일 "크메르루주 지도자 10여명이 국제법정에 서게 될 것" 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제법정이 열릴 경우 단죄가 불가피한 상황에 몰린 키우 삼판이 먼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면서 면죄부를 받으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그는 "나는 당시 명목상 지도자였을 뿐이며 킬링 필드 정권하에서 여행의 자유도 없었다" 면서 자신은 학살행위에 대한 정책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히려 그는 "지난 78년 중반께 아내의 친척들이 1년이 넘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수감돼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서야 크메르루주 정권의 잔혹행위를 인식하게 됐다" 며 책임을 비켜가려고 애썼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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