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한은 총재, 가계대출 더 우려 깊게 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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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여기저기서 가계부채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국회 업무보고를 통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수준, 특히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이 국제 수준에 비해 과도하다고 밝혔다.

이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145%. 연말 기준으로는 더 올라 한은에 따르면 152.7%에 달한다. 이런 가계부채비율은 모기지론의 부실화가 터지기 직전인 2007년 미국(138%)이나, 이른바 카드대란이 터진 2002년 우리나라(131%)의 상황을 훨씬 웃도는 것이다. 높은 가계부채비율 자체도 문제지만 추세나 내용 또한 불안한 모습이다.

우선 2007년을 정점으로 가계부채를 줄여온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에서만 유독 상승세(2007∼2009, 136→139→152.7%)를 보인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가계대출 증가분 중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7∼2009년 29.0→52.4→95.1%로 격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들어 1월 감소, 2월 증가로 아직 혼조 양상이다. 하지만 증가 전환한 2월이 한은의 금리인상 시도가 확실하게 꺾인 시기였다는 점, 2월 대출 증가가 주택 관련 대출에 의해 주도됐다는 점,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이번 주 최저 연 3%대까지 떨어졌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마음을 놓을 상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지난주 국회 업무보고에서 민간 자생력 회복과 경기 더블딥 가능성을 점검하고서 금리를 조정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다시 밝혔다. 아울러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시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무차별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접근과는 구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간을 읽어보면 금리인상은 시기상조며, 가계부채는 정부의 각종 규제조치로 대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 총재의 말대로 금리인상은 특정 부문, 계층을 표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차별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접근이다. 결과적으로 누군가 이익이나 손해를 보겠지만 그 자체를 미리 상정하진 않는다. 만약 핀으로 환부를 집어내고 위험부위만 메스로 제거할 수 있다면, 그래서 더 큰 피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방법이다.

하지만 결국은 규제와 감독을 의미하는 미시적 접근은 대상의 획정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고, 도입·해제 모두 정치논리에 휘둘리기 쉽다는 중대한 약점이 있다는 점도 생각했으면 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 일본이 바로 그랬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담보대출인정비율(LTV) 등의 적절한 활용이 분명 좋은 역할을 했지만, 그럼에도 주택 관련 대출을 핵으로 가계대출이 급증한 현실에 대해 한은 총재만큼은 좀 더 우려 깊게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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