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여행과 화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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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호 02면

“여행은 사회적 죽음이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이 남아있던 자리를 본다. 그러면서 존재가치를 다시 확인한다. 그 경험 덕분에 사람들은 여행을 마치고 다시 부활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언젠가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글의 한 대목은 비행기에 오를 때마다 떠오르곤 합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간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아쉬움, 그 묘한 감정의 불협화음을 새삼 느끼면서 말이죠.

이 말의 기저에는 아무 사고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여행을 떠난 사람도, 보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죠. 그런데 그 전제가 흔들린다면….
이번 런던 출장길에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지난 14일 아이슬란드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한 화산재 구름 때문에 히스로공항이 폐쇄됐습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도 문을 닫았다는 소식입니다. 이 글을 쓰는 16일 오전(현지시간) TV에서는 “유럽이 갇혔다”라며 계속 긴급방송을 내보내고 있네요. “언제 풀릴지 아직 모른다”는 걱정스러운 멘트와 함께.

사실 출장이야 계속 회사와 연락하느라 여행과 다르고 그래서 ‘사회적 죽음’을 느낄 새가 없지만, 이번 공항 마비 사태를 보면서 갑자기 ‘자연적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만약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동안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내가 없으면 우리 가족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가족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뉴스를 보니 한국에서는 천안함 인양 작업이 한창이네요. 그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아무 일 없이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772함에 올랐을 것입니다. 말없이 차가운 물속에서 돌아온, 혹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그들을 보면서 이들의 자연적 죽음이 결코 사회적 죽음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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