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기준 적용 … 성폭행범 집행유예 첫 취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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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의류업을 하는 김모(51)씨는 서울 면목·신당동 등에서 20대 여성을 잇따라 성폭행했다 지난해 경찰에 붙잡혔다. 강간 혐의 등으로 기소된 그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1심을 맡은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1부가 1명에 대한 성폭행 혐의만 인정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했기 때문에 다른 1명에 대한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또 “김씨가 피해자와 합의했고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이성호)는 김씨에게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고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범행이 계획적이고 피해자를 유리조각으로 위협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겉으로는 기부·봉사활동을 하는 등 이중적이고 양면적인 성향을 보인 점에 비춰 추가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의 양형 기준을 적용해 집행유예를 취소한 첫 사례다. 재판부는 김씨의 ▶계획적 범행 ▶반복적 범행 ▶위험한 물건 사용 세 가지를 부정적 참작 사유로 꼽았다. 반면 긍정적 참작 사유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한 가지뿐이었다. 재판부는 “김씨가 다른 범죄의 전과가 두 차례 있는 점을 봤을 때 집행유예 선고는 적절치 않다”며 “김씨를 일정기간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고소 취하로 1심에서 인정받지 못한 김씨의 범죄 사실도 항소심 형량에 반영됐다.

서울고법은 12일 합동 양형토론회를 열어 1심부터 양형 기준에 따른 엄정한 형을 선고키로 했다. 항소심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심 형량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관계자는 “1심의 형량이 타당할 때만 항소심이 이를 존중한다는 뜻”이라며 “1심 재판부가 좀 더 엄격하게 양형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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