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국경제의 진퇴양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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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이 동시에 한국 경제의 불안이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불확실성에서 연유한다고 지적했다.

OECD는 3일 공표한 한국 경제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의 불안심리는 경제위기 후의 구조조정이 지연됐기 때문" 이라고 분석했고, IMF도 이사회 보고서를 통해 "시장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업 및 금융부문에 잔존한 취약성을 해소하는 확고한 조치를 취할 것" 을 주문했다.

이는 "구조조정 추진과 불확실성 제거가 유일한 생존책" 이라는, 그동안 수없이 반복된 국내외의 지적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같은 지적에 대해 정부도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강화' 를 외쳐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 지연은 여전하다. 왜 그런가.

외형상 정상기업으로 치부되던 기업들이 부실기업으로 지정되면 막대한 부실채권 압력에 짓눌린 금융기관들이 대손충당금의 신규 부담을 떠안게 되고, 금융시장이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단기적으로나마 위기적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동안 투입된 1백50조원의 공적자금으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할 수 있다" 고 장담해온 정부도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해소를 위해 공적자금을 신규로 투입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스가 '한국 경제의 진퇴양난(進退兩難)' 으로 꼬집고 있는 어정쩡한 자세로 마냥 이대로 갈 수는 없다.

노조 반발을 우려해 부실기업이 구조조정을 미루고, 부실화를 우려해 채권금융기관이 부실기업 적시 의무를 소홀히 하며, 경기침체를 걱정해 정부가 부실한 기업과 금융기관의 연명에 연연한다면 한국 경제 전체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공멸의 길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경제위기 당시의 심정으로 돌아가 총체적 부실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부실정리와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불확실성의 제거에 나서야 한다.

"대우자동차와 현대투신 등 시장 불확실 요인을 3분기까지 제거하겠다" 는 진념(陳稔)경제부총리의 결의가 얼마나 실천으로 옮겨질지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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