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생각의나무' 제명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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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서점에서 자사 책을 대량구입, 베스트셀러 목록을 조작해온 출판계의 고질적인 병폐에 대해 출판계 스스로 칼날을 들이댔다. 2백50여개 단행본 출판사로 이뤄진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이른바 '사재기' 에 대한 자체조사 결과 일부 출판사들의 혐의를 포착하고, 이 중 생각의나무를 제명했다.

실명공개.회원제명과 같은 파격적인 조치가 나오기까지 출판인회의 내부에선 이견이 많았다. 무엇보다 '누워서 침뱉기' 가 되지 않을까, 출판계 전체에 대한 독자들의 불신을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또 아무리 물증 확보가 어렵다 해도 몇몇 출판사만 적발해 공개하는 것은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독자 우롱, 나아가 '사기' 나 다름없는 사재기의 비도덕성에 대해 출판사들의 자정결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더 높았다.

특히 지난 6~7월 사재기 문제가 공론화된 뒤 감시활동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들의 행태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조사결과에 충격을 받고, 행동을 취할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이미지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출판사 간판을 내건 지 겨우 3년 남짓인 생각의나무처럼 뿌리가 약한 신생 출판사는 더욱 그렇다. 이번 출판인회의의 제재가 분명 필요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왠지 찜찜한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출판인회의측은 가장 증거가 확실한 한 곳만 실명을 공개한 것이고 "올바른 출판 환경이 확립될 때까지 조사를 계속해 결과를 밝히겠다" 고 하지만, 혐의를 포착한 8곳 출판사 중에 물증이 확보된 곳이 생각의나무뿐이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한마디로 '본때 보이기' 였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또 당분간 몸들을 사리겠지만 이런 조치만으로 사재기가 근절될지도 의문이다. 몇 년 전에도 도서관련 전문지를 통해 사재기를 한 출판사 한 곳의 실명이 공개돼 큰 타격을 입혔지만 결국 그 때뿐으로 끝나고 말았다.

사재기는 사실 출판계의 온갖 병폐들이 뒤섞인 복잡한 문제이고 하루 아침에 근절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판계의 꾸준한 자기 반성과 자정노력이 더욱 중요하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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