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4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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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43. 무관심한 절 살림

성철스님은 평생 수행에만 전념했을 뿐 다른 일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외부와의 접촉이 별로 없었으며, 해인사라는 큰 절의 살림살이에도 간여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말하자면 철저하게 선승(禪僧)으로 일관한 삶이었다. 당연히 큰절 살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

성철스님이 큰절 살림에 참견하는 경우는 어쩌다 큰절에 사는 스님이 올라와 잘못된 일에 대해 보고했을 때다. 그러면 득달같이 주지스님을 불러올려 호통을 치곤 했다. 성철스님에게 직접 절집 살림 얘기를 할 정도면 대부분 산내에서 무게 있는 중진스님들이다.

그런 스님들의 경우 특정 사안을 얘기한다기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차를 마시다 돌아간다. 무슨 못마땅한 소리를 들었을 경우 성철스님은 손님이 시야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호통을 친다.

"주지 올라오라고 해. 유나도 오라카고. "

대개 절집의 살림을 책임지는 주지를 주로 부르지만, 참선공간인 선방을 책임지는 유나(維那)도 자주 불렀다. 어떤 경우는 특정 스님을 지목해 부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는 우왕좌왕하기 일쑤이고, "방장스님이 부르신다" 는 소리에 놀란 스님들은 "뭐 때문에 그러는지 좀 얘기해달라" 며 안절부절 못한다.

산길을 숨차게 올라온 스님들이 모이면 성철스님은 자신이 들은 얘기를 그대로 반복하곤 했다.

"금방 ○○이가 내한테 왔다갔는데, 요새 해인사 사정이 이렇다면서…. "

그대로 노기(怒氣)를 뿜어내면 주지나 유나스님이나 모두 성철스님의 격한 성격을 잘 아니까 일단 잘못했다고 빌고 나온다.

"저희가 미처 모르고 그랬습니다. 앞으로는 잘 살필테니 이번 일은 너그러이 살펴주십시오. "

성철스님은 한참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가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있으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하며 한번 으름장을 놓는다. 이어 "어서들 가 소임 잘 보라" 는 큰스님의 말을 끝으로 물러나오는 스님들은 "휴우" 하며 한숨을 쉬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곤 했다.

문제는 큰스님이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바람에 해인사 살림살이를 일러바친 스님이 곤욕을 치러야만 했던 점이다. 예컨대, 큰스님이 "원택이가 그러던데…" 라고 하면, 당연히 주지스님은 방장스님 방에서 물러나오자마자 나를 찾게 마련이다. 당연히 산중에는 "방장스님께는 아무 말씀도 못드린다" 는 말이 떠돌았다. 나도 뭐라고 말했다가 핀잔만 받을까봐 아무 얘기도 못하고 한동안 지냈다. 그런데, 그런 사정이 성철스님 귀에까지 들어갔다. 하루는 방 청소를 하고 있는데 큰스님이 넌지시 물었다.

"아레께(그저께) 주지 불러 야단쳤더니, 주지가 큰절에 가서 ○○이하고 크게 붙었다면서?."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 솔직히 말했다.

"큰스님께 와 얘기해주신 스님 이름을 거명하니까 주지스님은 '고자질했다' 고 생각해 가만 있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하실 때 그 스님 이름은 빼시고, '내가 들으니 이런 말이 들리는데 주지는 어떻게 생각하노' 정도로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솔직한 말이지만 큰스님 귀에는 거슬렸던가 보다.

"이놈아, 이것 저것 숨길 거 뭐 있노. 누가 이런 말을 하는데, 그렇거든 주지는 살펴서 잘 해라는 얘긴데 싸우기는 왜 싸워. "

그런데 다음날 아침 큰스님의 마음이 달라졌다.

"그래, 가만 생각해 보니 니 말이 맞네. 그러면 이제 누가 내한테 말해도 이름을 안 밝히고 주지한테 이야기하지. "

이후로 큰스님은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얘기했다. 나중엔 어차피 다 알려지지만, 당장 산중의 소란은 덜해졌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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