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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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39. 새벽 운동

성철스님은 새벽 3시 전에 일어나 꼭 백팔배 예불을 올렸다. 새벽에 눈을 부비고 일어나면 벌써 큰스님 방에선 염불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예불이 끝나고 아침 공양 때까지 방에서 무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좌선하는 것인지, 책을 보는지, 아니면 그냥 누워 쉬는지…. 방에 들어가 보지 않고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 시찬 소임을 맡아 큰스님 방을 들락거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큰스님이 새벽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조금씩 알게 됐다. 처음 큰스님의 새벽 방 모습을 본 것은 어느 날 새벽의 소동 덕분이었다.

지금처럼 수세식 해우소(화장실)나 세면시설이 건물내에 없었기에 시찬은 항상 큰스님 방안 양동이에 물을 채워놓아야 했다. 큰스님은 그 물로 세수하고 뒷문을 열고 마당에 버리곤 했다. 큰스님이 문밖으로 소리를 질렀다.

"양동이에 물이 와 없노!"

전날 밤 깜빡한 모양이다. 헐레벌떡 물을 떠다 양동이에 붓고, 흘린 물을 닦으려고 걸레를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큰스님이 옷을 벗고 계셨다. 옷이래야 저고리 하나다. 큰스님은 속옷을 입지 않았다. 윗몸에 열이 많아 속옷을 걸치면 답답해서 못 견딘다고 말했다.

반면 다리 쪽은 추위를 많이 타 겨울에는 핫바지를 입고 내복을 두 겹이나 걸친 다음 다시 개실로 짠 털버선을 신어도 발이 시리다고 했다.

깜짝 놀란 나는 '뭘 하시려고…' 라는 생각에 물끄러미 바라봤다. 큰스님이 내 마음속을 꿰뚫어 본듯 말했다.

"내가 지금부터 뭘 하는지 한번 볼래?"

수건을 물에 담가 적셨다가 다시 꼭 짰다. 그 물수건으로 전신을 마찰하기 시작했다. 마찰하다 물기가 마른다 싶으면 다시 담갔다가 짜서 문질렀다. 손과 팔에서 시작, 목과 어깨.가슴.등.다리 순으로 빡빡 밀었다.

'한 번 세운 원칙은 끝까지 지킨다' 는 성격의 큰스님은 나중에 알고보니 1년 3백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냉수마찰을 했던 것이다. 그 이후로 큰스님 방에 물 떠다 놓는 일에 한결 정성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난 어느 날 새벽엔 큰스님 방에 여쭐 말씀이 있어 들어갔는데, 큰스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숨도 가빠하면서 상당히 고난도의 요가 비슷한 체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한참 운동하는데 뭐라고 말하기가 어색해 바로 물러나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 아침 공양상을 들고 들어갔다.

"니, 새벽에 내가 하는 것이 뭔지 아나?"

큰스님이 궁금해할 줄 알고 묻는 것이다.

"무슨 요가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

"임마, 요가하고 새벽에 내가 한 체조하고는 다르다. 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전래돼 온 맨손운동을 내가 정리했제. 그리고 하루도 안빠지고 매일 한다 아이가. "

큰스님은 우리에게 그 체조를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았다. 배우기엔 너무 어렵게 여겨져 차일피일 미루고 말았는데, 결국 배우지 못하고 말아 지금도 아쉬움이 적지않다. 이처럼 큰스님의 새벽일과는 한가하지 않았다. 새벽 3시면 어김없이 백팔배 예불 올리고, 선(禪)체조 하고, 냉수마찰을 하는데 족히 한시간이 넘게 걸렸다. 큰스님은 그렇게 빈틈없이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냉수마찰이나 선체조를 하라는 말은 전혀 없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과를 쫓아가기에도 바빴던 당시엔 그런 일을 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 생각했었다. 큰스님이 가신 지금, '참 어리석은 생각으로 살았구나' 하는 아쉬움이 무겁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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