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르헨티나발 경제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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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르헨티나 사태가 심상치 않다. 아르헨티나에 대한 국가신용 등급이 하향조정됨과 동시에 아르헨티나 및 주변국의 주가와 화폐가치의 폭락이 이어지고 있다. 1천3백억달러의 외채에 대한 상환불이행 상황에 빠질지 모른다는 지난 수개월의 시장 우려가 이제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외채상환 능력에 대한 국제신인도의 급락으로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여간 걱정되는 상황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가 주변국에 국한돼 파급되고 있고 남미경제를 지탱해 주는 미국의 증시로 불똥이 튄다는 조짐은 아직까지 없다.

그렇다고 안심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다. 언제라도 태평양을 건너 직접적으로, 아니면 미국 등 남미경제와 직결된 금융시장을 경유해 간접적으로 한국 등 동아시아로 번질 위험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동아시아가 경제위기를 맞았던 1997년에 비해 대륙 규모의 경제위기에 대한 국제적 대응력이 저하된 점은 적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새로이 경제위기가 발생할 경우 동원할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이 바닥을 보이고 있고, 또 동아시아가 조기에 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했던 미국 경제의 활기도 지금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바로 그 이유로 4백억달러에 이르는 국제적 지원 약속과 국내적 반발 속에 어렵사리 마련한 아르헨티나 정부의 재정적자 감축방안에 대한 시장의 반응에 불신의 빛이 역력한 것이다. 물론 외환보유액이나 국제수지 흑자 등을 고려할 때 우리가 또다시 외환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의 금융.외환시장이 과거 어느 때보다 투기성 해외자금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정부의 외채상환 능력 저하이지만, 그 뿌리가 방만한 재정운용에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구조개혁과 사회안전망 구축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재정적자가 급속도로 누적됐기 때문이다. 재정건전화에 대한 의지를 다시금 다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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