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항공안전 낙제국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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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의 항공 안전이 낙제점이라는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평가는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 아직은 1차평가이고 오는 16일 최종 판정이 남아 있다고는 한다. 그렇다 해도 불안하고 망신스러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조사는 FAA가 우리 정부의 항공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 항공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본부 통제인력과 전문 기술인력 ▶사고 조사의 객관성 ▶비행계획.사고방지 프로그램의 적정성 등 8개 평가항목에서 모두 낙제점수를 받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정부의 항공사 안전관리 감독 기능이 엉망이라는 평가다.

최종 판정에서도 같은 평가를 받게 되면 우리나라는 항공 안전 위험국가를 뜻하는 2등급 국가로 분류된다. 이렇게 되면 당장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미국 내 신규 노선 취항이 금지되고 기존 노선운항도 제한되는 등 항공산업 전반에 걸쳐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게다가 아프리카나 남미의 후진국들과 똑같이 항공 후진국으로 분류돼 돈으론 따지기도 힘든 나라 망신까지 당하게 된다. 안전을 믿을 수 없는데 인천공항이나 내년 월드컵이 외국 손님을 끌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쯤 되면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따져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항공기 사고는 10건이 터졌고 피해액은 1천8백억원을 넘는다. 사고가 날 때마다 정부는 항공안전 강화를 다짐했다. 그러나 결과는 '2등급' 추락위기다. FAA의 평가에 앞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도 1년 전 비슷한 지적을 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FAA의 평가가 나오자 정부는 전문인력 증원.관련 법규 손질 등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비록 '벼락공부' 식 대책이라도 잘 납득을 시켜서 2등급 판정만은 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동이 빚어진 원인과 책임은 이번 기회에 분명히 가리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하루 10만명이 넘는 항공기 승객들이 안심하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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