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내집앞 공짜 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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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평창동의 새 아파트로 이사간 다음날 아침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신문 세개가 눈에 띄었다. 하나는 중앙일보가 발행하는 영자신문으로 우리가 원했던 것이다. 다른 두개는 우리가 읽기엔 아직 역부족인 한국어 신문이었다.

***국세청의 주장 납득 안돼

7주 이상 그 신문들은 어김없이 배달됐다. 누군가 말했다. 수금원이 곧 찾아올 것이며 신문값을 내지 않겠다고 하면 불손하게 굴 것이란다. 그러나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순진한 눈동자를 깜빡거릴 작정이다.

화요일 저녁 우리 부부는 일주일치의 신문을 - 중앙.조선일보 - 거둬 재활용 쓰레기 통에 갖다 버렸다. 이제껏 90부 넘는 신문을 읽지도, 펴보지도 않은 채 내다버렸다.

신문을 버려야 한다는 일은 조금 거추장스럽다. 그런 신문 때문에 나무들이 헛되이 베어졌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신문을 내게 준 게 범죄라고□

국세청은 그렇단다. 적어도 위법적인 관행이란다. 그래서 중앙.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각각 8백억원 이상의 세금을 추징하고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탈세□ 내가 원하지 않는 신문을 갖다 놓았다고□ 물론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예를 들어 회계장부 정리나 자회사와의 거래 등에 문제가 있었단다. 국세청의 그런 주장이 옳은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비판적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혹은 그들을 위협하겠다는 정치적 배경에서 이뤄졌는지, 아닌지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신문을 공짜로 준다는 게 부도덕하고, 과세대상 행위라는 국세청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세청은 너무 많은 신문을 - 공정거래위에 따르면 유가지의 20% 이상 - 공짜로 나눠주는 게 불공정하고 무자비한 기업관행이며 경쟁자들을 파산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배포된 무가지를 누군가 사주었다면 얼마나 될까 하고 계산해냈다. 그리고 그 액수를 해당 신문사의 수입으로 간주해 세금을 매긴 것이다.

물론 존 록펠러가 스탠더드 오일사의 독점체제를 구축하고 억만장자가 된 것은 약탈적 가격정책(predatory pricing)을 통해서였다. 미국 법원들은 1백여년 전에 그같은 관행이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스탠더드 오일의 분사를 명령했다.

그러나 고전적인 반독점법은 경쟁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지 약한 경쟁자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라고 늘 강조해왔다.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는 의도적 기업행위는 바로 모든 기업들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성공하기 위해 구사하는 방법이다. 판매부수 확장이 목표였든, 아니면 경쟁자들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서였든 한국의 신문사들은 무가지 배포를 생산적인 마케팅 전략이라고 판단한 게 분명하다.

그런 전략이 현명했는지, 아니면 멍청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수십만부의 신문을 매일 공짜로 나눠주는 게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 일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국세청은 어떻게 이를 불공정 거래관행으로 부를 수 있을까?

한국 신문시장의 경쟁은 대단히 치열하다. 이른바 '조.중.동' 은 각기 매일 2백만부 안팎을 팔고 있다. 그들의 치열한 경쟁은 거의 비슷한 추징금에서도 확인된 셈이다.

***소급 적용한 無價紙 규칙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법의 소급적용에 있다. 어떻게 행위가 발생한 이후에 만들어진 법을 위법성을 판단하는 잣대로 들이댈 수 있는가. 무가지 배포를 유가지의 20%까지 인정한 것은 한때 신문사들이 이를 자발적인 지침으로 삼았기 때문이란다. 언제부터 민간기업의 자발적인 지침이 법의 효력을 갖게 됐는가?

공정거래위의 또 다른 규칙은 무가지 배포를 연속 7일까지만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난 1일부터 그 효력이 발생했다. 국세청은 이 규칙을 왜 소급적용하는가?

나는 로스쿨을 졸업하고는 곧 언론계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송사를 다뤄본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이 나의 법률적 경력을 잠깨워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그만큼 국세청을 법정에서 철저히 반대신문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도 문제의 신문 두개가 현관 앞에 놓여 있었다. 이봐, 조심들해! 내 법률적 기술은 녹슬었어. 더구나 한국에서는 아직 변호사로 뛸 수가 없어, 당신들을 구해줄 수 없다니까.

할 파이퍼 중앙일보 영자신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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