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 전화위복이라는 게 이런 것을 말하는 거겠죠? 훌륭하십니다. 어떻게 골프가 유행할 것을 미리 아시고. 더욱이 레슨코치로 나가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을 텐데, 회사에 눌러 앉을 생각을 한 점도 남달라 보입니다. 아무나 택할 수 없는 블루오션을 잘 잡았다는 뜻입니다.
취미생활이 갖는 강점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상사와 어울릴 수 있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계급장 떼고 어울릴 수 있는 계기가 되니까요.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이 상사의 기호에 맞춰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 남들보다 고수라면 이점이 상당히 많아지곤 하죠.
상사가 바둑을 좋아하는데, 내가 바둑고수라면? 상사가 테니스를 좋아하는데, 내가 테니스 고수라면? 이런 식으로 내가 뛰어난 무엇을 상사가 좋아한다면, 그 상사와 관계는 훨씬 더 돈독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인심(?)도 쓰면서 호감도 챙길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골프처럼 요즘 모든 직장인들이 좋아하거나 또는 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야에서 장기를 가지고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듯합니다. 굳이 특정 라인에 줄을 서지 않더라도, 내가 주도권을 가진 상태에서 모든 라인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조심해야 할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업무로 바쁜 데 윗사람이 불러댄다? 그것도 직속상관이 아닌 더 위의 상사가? 한두 번은 양해를 하겠지만, 이런 일이 되풀이 되면서 업무 부담이 동료나 직속상관에게 떠넘겨진다면, 그때부터는 가시밭길을 각오해야 합니다. 아마 L부장도 그런 시행착오를 거쳤을 겁니다.
시도 때도 없이 위에서 찾아대고, 해외에서 손님이 오면 가끔은 평일에 접대골프에 불려 나가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급‘에 어울리지 않는 일상을 보내다 보면, 직속상관이나 동료들로서는 아주 아니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럴 때 발휘해야 하는 센스는? 평상시에 틈날 때마다 인심을 쓰는 것이죠. 하다못해 스크린골프장에라도 데리고 다니면서 코치를 해주는 식으로. 업무에 미진한 부분을 다른 것으로 보상해준다면, 그들도 불만을 크게 갖진 않을 겁니다.
L부장은 회사 내에 자기 제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고 합니다. 제자들 속에서 살다보니 이제는 사명감도 든다고 하고요. 어쩔? 사명감씩이나? 직원들의 골프 실력을 향상시켜, 회사의 영업활동에 기여한다는 사명감 말입니다. L부장은 이 일로 차장 시절에 회사에서 표창장까지 받았다는 것 아닙니까!
L부장님! 당신이 정말 부럽습니다. 범용으로 쓰일 뭔가를 미리 익혀두라는 말씀도 전적으로 옳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강호제현들이 귀하의 내공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미처 그런 부분에 눈을 뜨지 못한 아둔함에 후회를 하고 있을 테고요. 또 그 중 일부는 내일 당장 아이들을 골프장으로 끌고 가겠죠.
그러나 남들이 다 하는 걸 하면 가치는 떨어지는 법! 앞으로 10~20년 뒤에 직장인들이 무엇에 미칠까를 먼저 생각한 다음에 종목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듯합니다. 그래도... ...골프는 계속 유효할까요? L부장님?
이종훈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