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방미 불허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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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황장엽(黃長燁.78.사진)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미국 방문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미 공화당 의원들이 최근 보좌관들을 직접 한국에 보내 黃씨에게 북한 정권 내부 사정과 인권 상황에 관해 증언해 달라는 초청장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 '고민하는 정부' =미 공화당측이 지난해 11월에 이어 또다시 黃씨에게 초청장을 보내자 정부 당국자들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우회적 방식이기는 하지만 黃씨의 방미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부정적 입장을 미측에 거듭 통보했음에도 또다시 초청장을 보낸 것은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측은 4일 "이번 초청은 의회 차원의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 자격" 이라며 "黃씨의 방미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사전에 충분한 검토와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국정원측은 또 "한.미는 黃씨의 방미를 위한 신변 안전보장 대책을 논의할 일정이 마련되지 않았다" 며 사실상 거부의 뜻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黃씨의 방미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黃씨의 발언이 남북 및 북.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체제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黃씨가 여과없이 북한의 인권 상황 등을 공개할 경우 그 파장이 '메가톤급' 일 수밖에 없어 정부로서는 고민스럽다는 게 외교소식통의 설명이다.

그러나 黃씨의 방미를 무조건 거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미 공화당의 요청에 점차 무게가 실리고 있어 미국과의 외교적 갈등을 피하려면 한.미간 협의를 거쳐 적절한 선에서 방미를 허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黃씨의 대리인격인 김덕홍씨는 "우리가 일반인이 아닌 만큼 정부가 보내줘야 한다" 며 "총재(黃씨)는 응할 결심을 하셨다" 고 초청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 "꼭 들어야겠다" =지난해 11월엔 당시 상원 외교위원장이던 제시 헬름스 의원 한명이 黃씨에게 방미 초청장을 보냈으나, 이번엔 헨리 하이드 하원 국제관계위원장.크리스토퍼 콕스 공화당 하원정책위원장이 가세했다.

2차 초청장의 내용은 1차 때보다 훨씬 구체적이며 적극적이다. 하이드 위원장은 黃씨와 그의 비서실장인 김덕홍씨가 오는 20일 시작하는 위원회의 주간 일정에 출석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콕스 위원장은 방미 날짜로 19일 또는 26일을 제시했다.

초청장들은 모두 黃씨에게 '신변 안전보장' 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黃씨 방미의 전제로 삼고 있는 '신변 안전' 문제도 상당히 진전될 가능성이 커 정부의 고민이 가중될 전망이다.

아울러 편지들이 지난 3월 김대중 대통령이 방미 중 헬름스 위원장과의 대화에서 "黃씨의 방미에 반대하지 않는다" 고 언급한 점을 상기시키고 있는 점도 우리 정부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 黃씨 근황=강연 등 외부 활동을 일절 중단한 채 북한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과 논문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黃씨는 서울 강남 지역의 안가에서 함께 망명한 김덕홍 탈북자동지회장과 생활하고 있으며, 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인 '통일정책연구소' 의 연구진과 이따금 토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서울=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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