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편가르기와 기든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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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분할통치를 영어로는 'Divide and Rule' 이라 한다. 말 그대로 '나누어 다스리는 것' 으로,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를 통치할 때 즐겨 쓴 수법이다. 피지배 민족을 갈라 적당히 이간질하면 서로 치고 받느라 민족주의고 뭐고 정신을 못차리니 더 이상 유용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가 끝나고 식민지들이 독립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그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는 걸 보면 이게 얼마나 악랄하고 교활한 수법인지 짐작이 간다. 우리 눈엔 똑같은 후투족과 투치족이 서로 피의 보복을 벌이는 르완다의 비극 이면엔 벨기에의 분할통치가 있다.

이제 국제사회의 영원한 물과 기름이 된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과 중동국가 간의 갈등도 다 영국 등의 분할통치 유산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제2차세계대전 후 분단된 한국과 독일도 같은 분할통치의 피해자였다. 단지 분할통치 받을 만한 일을 한 독일이 분단을 극복한 반면, 일본 대신 유탄을 맞은 우리는 아직 통일의 꿈도 못꾸는 현실이 가슴 아플 뿐이다.

이처럼 억울하게 남북으로 갈린 것도 모자란지 우리는 잘도 쪼개지고 있다. 동.서간 지역갈등이 이제 회복불능의 단계에 근접한 가운데 각계각층이 열심히들 핵분열 중이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노와 사,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심지어 얼마전엔 군제대자 가산점 문제를 놓고 여와 남이 대립하기도 했다. 작금의 관심사는 단연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정권과 언론, 신문과 방송, 신문과 신문의 대결이다. 가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의 난세다.

이를 놓고 여야는 국민 편가르기를 한다고 서로 삿대질이다. 누군가 편가르기를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누구 말이 맞는지도 국민들은 잘 안다.

아무리 역사 발전이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신채호), 혹은 정(正)과 반(反)의 통합(헤겔)의 결과물이라지만 이런 식의 반목과 질시는 오히려 역사를 후퇴시키는 소모적.퇴영적 아귀다툼일 뿐이다. 이러고도 우리가 통일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을까.

마침 『제3의 길』의 저자인 앤서니 기든스가 오는 9일 호암아트홀에서 유민(維民)기념강연을 갖는다. 좌도 우도 아닌 현대판 정.반.합의 산물인 그의 신자유노선 강연에서 갈가리 찢어진 우리사회 대통합의 해법을 기대해 본다. 나라의 앞날을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와서 그의 충고를 들어 보시라. 공짜란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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