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지금 짐 모리슨 추모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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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프랑스 파리 동부의 페르 라셰즈 묘지(40㏊ 규모).

이곳에는 몰리에르.발자크.아폴리네르.모딜리아니.쇼팽에서 이사도라 덩컨.에디트 피아프.이응로 화백에 이르기까지 한시대를 풍미했던 문화예술계의 거장들이 잠들어 있다.

파리 시민의 휴식 공간이기도 한 이 묘지의 '스타' 는 단연 짐 모리슨이다. 1960년대 미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도어스(Doors)' 의 리드 싱어였던 그는 71년 27세의 젊은 나이로 파리 시내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모리슨의 사망 30주기를 맞은 3일(현지시간) 페르 라셰즈 묘지에는 전세계의 팬 수천명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앳된 표정의 동양계 소녀에서 금발의 중년 남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팬들은 그의 묘비 주위에 둘러앉아 도어스의 히트곡 'Light My Fire' 'Strange Days' 등을 흥얼거리며 그들만의 축제를 연출했다. 그의 대리석 묘비는 "사랑해요, 짐" 등의 문구가 씌어진 다채로운 카드와 화환으로 뒤덮였고, 주위는 그가 생전에 즐겼던 대마초 향기로 가득했다.

5년마다 한번씩 모리슨이 숨진 날 이곳을 찾는다는 독일인 의사 부르카르트 궤케(45)는 "우리가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는 매우 특별한 날" 이라며 감격해 했다.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인데도 이날 하루 종일 모리슨과 함께 있고 싶다고 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학생 패트릭 슈이(18)는 "그가 좋아했던 술을 가져오지 못해 아쉽다" 고 말했다.

91년 20주기 때는 열성 팬 수천명이 술마시고 노래하며 소동을 벌였다. 경찰은 최루탄을 쏴 이들을 해산시킨 뒤 주류와 악기를 들고 묘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현재 그의 무덤 주변에는 두대의 감시용 폐쇄회로 카메라가 24시간 돌아가고 있다.

올해는 그의 유해가 6일 미국으로 이장된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나돌아 묘지에 많은 팬들이 쇄도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팬들의 추모행사가 뜻밖에 차분하게 진행돼 경찰이 숨을 돌렸다.

모리슨의 죽음은 아직도 의문에 휩싸여 있다. 당시 검시의는 심장마비로 인한 자연사라는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죽은 게 아니라 흠모했던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발자취를 좇아 몰래 아프리카로 떠났고, 그의 묘지는 텅 비어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페르 라셰즈를 찾은 팬들에게는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 대만 여성 슈슈는 "모리슨은 갔지만 그의 음악은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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