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2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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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4. 내 이빨 물어줄래?

어느 날 중년의 스님 한 분이 백련암을 찾아왔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먼 길 오느라 끼니를 거른 스님께 밥상을 차려드리라는 원주스님의 명에 따라 내가 상을 봐드렸다. 10여분쯤 지났을 시간, 그 중년 스님이 마루로 뛰어나와선 고함을 질렀다.

"이 절 공양주가 누구야? 어서 이리 와!"

나는 영문도 모르고 달려가 "제가 공양줍니다" 라며 공손히 반절을 했다. 스님이 손에 들고 있던 종이뭉치를 내 발 쪽으로 내동댕이치면서 노발대발이다.

"내 이빨 물어내, 이놈아!"

종이뭉치에 싸인 밥알이 마당에 흩어졌다. 밥에 든 돌을 씹은 것이다. 서러움이 뱃속 깊은 곳에서 응어리지며 솟아올랐다. 그동안 고달팠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며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도시 놈이 절 생활에 익숙해지려고 무척이나 참고 애써 왔는데…. "

굵은 눈물을 떨구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 스님이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저 스님 성질이 워낙 급한 분이라 그렇다. 이해하라" 며 위로해 주었다. 복받치는 감정인지라 위로의 말에 설움이 더했다. 나를 성철스님과 처음 만나게 해주었던 친구스님이 보다 못해 내 손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뭐 참을 만큼 참고 살아왔으면서 무슨 그런 추태를 보이느냐. "

위로 겸 질책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다. 내가 뭐 잘 났다고, 행자로서 자존심 같은 거 버린 지 오래지 않았는가. 그렇게 마음을 삭이고 있는데, 아까 그 스님이 다시 찾았다.

설움을 많이 삭인 터라 먼저 사과를 했다. 그랬더니 그 스님이 오히려 "급한 성격에 야단을 쳐서 내가 미안하다" 며 사과를 했다. 스님은 이어 "니가 참선한다고 하니, 내가 상기병(上氣病.기가 머리로 쏠려 생기는 두통)을 막는 체조를 가르쳐 주마" 하며 선(禪)체조를 가르쳐 주셨다. 스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가르치는데, 나는 속마음이 안정되질 않았으니 그저 스님 따라 시늉만 할 뿐이었다.

당시 그 선 체조를 배워 익히지 못함을 나중에 크게 후회해야 했다. 그때는 상기병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냈지만 나중에 참선하던 중 바로 그 병으로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그날 해질 무렵 큰스님이 찾았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묵묵히 있으니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놈아! 억울하면 산천이 떠나가게 실컷 한번 울어보지 그랬나□ 한번 말해봐라. "

불같은 재촉에 낮에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래 이빨 물어줬나?"

큰스님의 엉뚱한 질문에 대답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그래 이빨 물어줬냐고 묻는다 아이가. 와 대답을 안하노?"

무슨 대답을 이끌어 내려고 낚싯줄을 드리우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뭔가 위로의 말을 해줄 것도 같아 용기를 냈다. 심경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빨은 못 물어줬습니다. 그렇지만 백련암 와서 반년 넘게 행자생활을 한 중에서 오늘 제일 마음이 아팠습니다. 절 생활을 익히지 못해 주변 스님들 불편하게 하고…. 여기서 절 생활을 접고 하산해야 되지 않겠나, 오후 내내 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야단맞을 줄 알았는데, 큰스님이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면, 내 이빨은 어떻게 물어줄래? 이놈아, 나도 니 밥 먹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나□ 니가 내 이빨 물어주려면, 도망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백련암에 살면서 내한테 그 빚을 갚아야제. 안그러나! 니 생각은 우짠데…?"

나는 그 때야 비로소 알았다. 그동안 큰스님도 돌을 많이 씹었다는 것을.

"공양주 열심히 하겠습니다. "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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