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도 정치자금 투명화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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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대통령을 비롯, 정치인들의 부패 스캔들이 꼬리를 물고 있는 프랑스에서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1946년 예산의 일부로 편입된 이후 매년 현금으로 총리에게 전달되는 정부내 '특별경비' 다.

연간 4억프랑(약 7백억원) 규모의 이 특별경비는 원칙상 국가배상금을 지불하거나 위기에 처한 우방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국가외교적으로 위급한 상황에 사용토록 돼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비 중 절반 가량이 비밀정보활동에, 나머지 일부는 총리실 경비로 사용되고 그 외에는 대통령궁과 정부 각 부처에 건네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법관 출신의 티에리 장피에르 유럽의회 의원에 따르면 97년 좌파 집권 이후 리오넬 조스팽 총리에게 전해진 돈은 10억프랑에 이른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어서 97년 한해에만 3억프랑의 특별경비가 현찰로 지급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우파 공화국연합(RPR)의 미셸 알리오마리 당수는 1일 정부의 기밀활동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비용을 제외한 특별경비는 마땅히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정부 유력인사들과 보좌진이 사기행위를 저지르고 돈세탁을 주도하는 나라는 프랑스가 유일할 것" 이라며 사용처가 불분명한 특별경비 지급관행의 즉각 폐지를 촉구했다.

장피에르 의원은 "매달 각부처의 금고 속으로 5백프랑짜리 돈다발이 들어가지만 세무당국에 신고된 사례가 전혀 없다" 고 비난했다.

그는 특별경비를 없애거나 최소한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처럼 용도에 대해 의회의 엄격한 감독을 받아야 한다" 고 주장했다.

내무장관 출신의 장루이 데브레 RPR의원도 특별경비의 철폐를 위한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프랑스 정부는 특별경비의 문제점 보완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플로랑스 팔리 예산장관은 국회에 출석, 올해 특별경비 규모가 3억9천3백만프랑으로 우파 집권 당시인 5년 전의 4억5천1백만프랑보다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우파 야당들이 특별경비 문제를 집중 제기하는 것은 최근 시라크 대통령이 파리시장 재직 시절 4억여원대의 여행경비를 현찰로 지불한 의혹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시라크 대통령이 여행권을 구입할 당시 어떤 방식으로 특별경비에 손을 댔는지 알 수 없다" 며 "특별경비는 프랑스 정계에서 가장 오래된 능구렁이" 라고 지적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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