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길수 가족 10명 서울행 일단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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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함경북도 화대군 일대에서 생활하던 장길수(17)군 일가족의 탈북 드라마는 장군 등 10명의 가족이 서울에 안착함으로써 일단 1막은 내리게 됐다.

장군 가족들이 극심한 식량난을 견디지 못하고 탈북을 시작한 것은 1997년 3월.

이때 외할머니 김춘옥(67)씨가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숨어든 것을 계기로 2년7개월 동안 다섯차례에 걸쳐 일가족 16명이 북한을 떠났다.

장군 일가족은 중국의 은신처에 숨어 있는 동안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남한의 탈북자 지원단체와 접촉, 서울행을 위한 묘안을 짜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3월 외할머니 金씨 등 가족 5명이 중국 공안당국에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송환되는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金씨가 지난 5월 혼자 재탈북에 성공한 것을 계기로 장군 가족들은 다시 서울로 가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한국행을 위한 중간경로를 놓고 공방이 벌어져 이들은 지난달 중순 중국 은신처에서 '제3국행과 UNHCR행' 에 대해 투표까지 했으나 끝내 의견이 엇갈렸다.

제3국행을 고집했던 한길군과 외삼촌 정대한씨 등 3명은 중국땅을 전전하다 지난달 26일 길수군 등 7명이 UNHCR 베이징(北京)사무소에 들어가 난민 지위 인정을 요청할 때 제3국으로의 탈출에 성공했다.

한길군 일행도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29일 한국행을 성사시켰고, 30일 싱가포르와 필리핀을 거쳐 입국한 가족들과 극적인 상봉을 할 수 있었다.

장길수군 가족 7명은 30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보도진을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등 잠시 포즈를 취했다. 김춘옥씨는 "이렇게 고국땅을 밟게 되니 인생을 처음 태어난 기분입니다. 정말 고맙고 반갑습니다" 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들은 중국과 필리핀 체류기간에 쌓인 피로 때문인지 다소 피곤하고 초췌한 모습이었으나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으며 건강상태도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울에 오지 못한 장군 가족 6명 중 2명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나머지 4명은 행방조차 묘연한 상태여서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2막이 시작될 것이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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