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걸 교수의 공공디자인 클리닉 <21> 음수대, 다가가서 마시고 싶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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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마시는 사람의 신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반 음수대(왼쪽). 냉각장치가 분리돼 있어 공간을 덜 차지하고 물 마시기 편한 서울시 아리수 음수대(가운데). 물의 파장을 형상화한 박스형 음수대(오른쪽).

꽃샘추위와 황사 바람 속에서도 봄은 왔습니다. 기온이 오르면 시민의 활동량이 증가하게 됩니다. 물 한 모금 마실 음수대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집니다. 수질 향상을 위한 정부의 노력으로 우리나라의 수돗물 수질은 122개 국가 중 8위 수준입니다. 그러나 공공장소의 음수대는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나마 설치된 음수대 관리가 허술해 비위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음수대에 다가가 물을 마시려면 수도밸브를 잡은 채 몸을 구부리고 머리를 옆으로 기울여야 합니다. 밸브로 수압을 조절하기 쉽지 않아 옷이나 얼굴이 젖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물이 튈 때도 있습니다. 대개 음수대는 성인의 신체를 기준으로 제작돼 어린이들은 이용하기 불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 없이 설계된 음수대 모습을 보면 다가가기도 싫고, 수질까지 믿음이 가지 않게 됩니다.

디자이너 안성모가 설계한 서울시 아리수 음수대는 이용자의 행태특성을 고려했습니다. 위생적이면서 감성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옥외 음수대는 날씨가 더울 때 수질이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냉각장치를 내장하게 되는데, 이 장치를 음수대와 분리함으로써 점유 공간을 최소화했습니다. 하단부에 공간적인 여유가 있어 휠체어 이용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분리된 냉각장치함이 어린이용 발판이 되도록 배려하였습니다.

또 도넛과 같은 고리 형태는 이용자가 손으로 잡고 물을 마시기 편합니다. 고리 테두리 바깥쪽에 버튼이 있어 잡고 살짝 누르면 물이 솟아납니다.

수압이 조절돼 물줄기가 고리를 따라 원형을 이루어 물 먹는 행위에 흥미를 더합니다. 고리 테두리 안쪽에는 조명이 내장되어 있어 밤에는 더욱 매력적인 시설물이 됩니다. 냉각장치가 일체화된 박스형 음수대는 퍼져나가는 물의 파장을 형상화해 시설물의 기능이 감성적으로 느껴지도록 했습니다. 여분의 물은 홈을 따라 돌아 배수구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에 물이 고이지 않고 늘 청결합니다.

수돗물의 수질 개선 노력과 함께 음수대는 그 모습부터 깨끗하고 매력적이어서 선뜻 다가가 입 맞추고 싶어야 합니다.

또 연령과 다양한 신체 조건을 넘어 모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돼야 합니다.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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