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학부모회장에 놀아난 영어 암송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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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의 학교에서 최근 영어 암송대회가 열렸다. 대회 참가자 1백15명 가운데 20명이 예선을 통과했다.

그런데 학부모 두명이 자녀가 예선에서 탈락한 데 의문을 품고 심사위원 선생님께 부탁해 평가 결과를 열람했다.

한 학부모는 학부모회장을 맡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자녀들의 성적을 보면서 다른 학생들의 것까지 본 모양이다. 그런데 학교운영위원장의 자녀는 점수가 낮은데도 예선을 통과한 것으로 돼 있었다. 두 학부모는 즉각 교장선생님에게 대회를 무산시키라고 요구했다.

교장선생님은 운영위원장의 자녀보다 점수가 높았던 15명을 추가 합격자로 통보하는 선에서 타협을 보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교육청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 일의 자초지종이 실렸다.

그러자 학교측은 일방적으로 대회를 취소시켰다. 20일 이상 대회를 준비해온 학생들만 어른들의 무책임한 결정에 상처를 받게 된 것이다. 학교측의 이런 결정은 어린 학생들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뜨린 것이며, 교육의 신뢰도에 흠집을 남겼다.

학교측이 운영위원장의 자녀라고 해서 성적이 미달되는데도 불구하고 예선을 통과시킨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각종 경시대회의 성적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투명하지 못한 대회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린 학생들이 학교와 교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게 될 것인지 걱정스러웠다.

김은혜.대구시 북구 읍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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