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함대 실종자 가족들 부활초도 켜지 않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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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예수님 부활의 기쁨에도 침묵의 미사를 드립니다. 슬픔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4일 오전 10시30분, 평택 2함대 사령부 내 만포대성당. 2함대 사목을 맡은 천주교 군종교구 이영탁 신부가 부활절 미사를 시작했다. 예년 같으면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부활계란을 나눠야 했을 부활절 미사가 침통하게 진행됐다. 신자들 가운데는 흐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전날 천안함 실종자인 남기훈 상사의 시신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날 미사 때는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 밝히는 대형 부활초도 켜지 않았다.

이 신부는 이날 강론에서 “어제 실종자 가족들이 ‘희망은 있지만 수색작업을 중단하라’는 하기 어려운 말을 하는 기자회견을 봤다”며 “슬픔에 또 다른 슬픔을 낳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놓아보낸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이라며 “슬픔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이 신앙의 힘이며 예수님 부활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2함대 내 해군평택교회의 부활절 예배 분위기도 무거웠다. 군데군데 실종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눈물을 찍어냈다. 어린이성가대가 나와 부활절 성가를 불렀지만 무거운 공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정기원 담임목사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며 침통해 했다. 정 목사는 설교에서 “죽음과 고난이 우리의 소망을 끊을 수는 없다”며 “하루살이가 1년의 삶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역시 지금은 죽음 이후를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천국은 반드시 있다”며 신자들을 위로했다. 정 목사는 기도 중간에 목이 메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2002년 제2연평해전 때 사망한 장병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2함대 내 법당에서도 일요법회가 열렸다. 원래 정기적인 일요법회는 없지만 이날은 실종자 가족과 2함대 장병 다수가 모였다. 실종자 어머니 중 한 명은 “법회에 참석한 어머니들이 모두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목을 놓아 엉엉 울었다”며 “다음 생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은·권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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