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1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14. "출가, 그럼 그래야지"

뒤숭숭한 밤을 보내고 아침공양도 하는둥 마는 둥 했다.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성철스님이 일찍부터 시자를 보내 찾았다. 스님은 뭔가 흐뭇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출가하기로 마음 묵었나. "

출가라는 것이 가벼운 일이 아니기에 결심이 서지 않는 한 확답을 해선 안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출가할 마음이 나지 않습니다. 여기 올 때는 큰스님 한 번 뵙고 간다고만 생각했지 출가할 생각으로 온 것은 아닙니다. "

불같은 성미에 벼락같은 소리를 치던 성철스님답지 않게 끈기 있게 설득해보겠다는 자세를 보인다.

"아이다, 한번 잘 생각해 보거래이. 중노릇도 잘하면 해볼 만한 거라. 이놈아, 내가 아무나 보고 중 되라카는 줄 아나. "

뭔가 확신을 가진 말투였다. 형형한 눈을 부라리듯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안됩니다" 란 대답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즉답을 피하기 위해 "그럼 나가서 한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하고는 물러나왔다. 스님의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그래 ! 그래 ! 한번 더 자알 생각해보거래이. "

객실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도(道) 높은 스님께서 "중 되라" 하실 때는 뭔가 뜻이 있을 터이다. 고령 금산재를 넘으며 신비체험을 한 기억도 범상찮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큰스님 따라 출가하면 도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솔솔 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서른살이 다 돼 가는 놈이 세상에 살면 뭘 얼마나 하고, 또 얼마나 출세하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큰스님을 찾아갔다.

"큰스님, 스님 가르침 따라 저도 출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큰스님이 빙긋이 웃는다. "그럼, 그래야지"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그럼 어서 서둘러라. 다시 대구에 갈 것 없지" 라며 연신 재촉한다. 정작 나는 착잡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정리를 위해 대구에 다녀오겠다고 말미를 구했다. 스님은 아쉬우면서도 불안한가보다.

"그래 그러면 너무 늦지 말고, 일주일 안에 돌아와야 된다. "

큰스님에게 다짐을 하고 대구로 돌아왔다. "내가 어디서 뭘하고 왔지" 하는 생각도 들고, 당황되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찾아 출가에 대해 의논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를 백련암에 처음 데려간 친구를 찾아갔다.

"나는 인제 출가한다. "

예상했던 대로 그 친구는 펄쩍 뛰었다.

"안가면 그만이지. 큰스님이 널 잡으러 오겠냐. 가지 마라. "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서 그 친구와 그날 밤 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다 새벽무렵 같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친구에게 "내가 안보이면 백련암으로 출가한 줄 알아라" 고 얘기하곤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을 두문불출하다가 결심했다. 이왕 마음먹은 일이고, 큰스님과 약속한 일이다. 이제는 "부모님께 무슨 말씀을 드리고 집을 나갈까" 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출가한다면 분명히 반대할 부모님이다. 일단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저번에 백련암에 갔더니 큰스님께서 그곳에 와서 공부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한 일년 백련암에 가서 공부하고 오겠습니다. "

어머니는 "그래 가서 공부 많이 하고 오너라" 고 하시는데, 아버지는 얼굴색이 달랐다. 아버지가 "공부하고 오기는 오는 것이냐" 고 묻는데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역력했다. 거짓말한 탓에 집에서 나올 때는 가득 책을 넣은 가방 두 개를 메고 나와야 했다. 무거운 가방을 지고 백련암까지 왔다. 출가한다면 필요없는 물건인데, 어쩌다 보니 절까지 들고 왔다. 백련암 일주문 앞에 당도해서야 비로소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제 도를 이룰 때까지는 이 길을 다시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