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투수 습관' 싸고 머리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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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야구는 투수와 타자의 '가위.바위.보' 게임이다. 9명이 하는 경기지만 주로 투수와 타자 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공을 던지는 투수와 이를 맞받아 치는 타자의 싸움이 계속된다. 투수와 타자의 대결은 상대의 결정을 예상하고 대응한다는 점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메이저리그 최후의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는 "투구 자세가 같은 투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투수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무엇을 던질 것인가를 결정한 뒤 던진다" 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우리가 가위.바위.보를 할 때는 무엇을 낼 것인지 결정한 다음 손을 내민다.

일본 야구에서 자주 쓰이는 '쿠세' (くせ : 표기법은 '구세' )라는 말이 있다. 쿠세는 몸에 밴 습관이나 무의식적인 버릇을 의미한다. 주로 타자보다는 투수의 습관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각 팀의 분석요원들은 투수의 투구 자세나 견제 동작, 글러브 위치를 정밀하게 분석해 특정 구질을 던질 때마다 조금씩 다른 차이점(쿠세)을 찾는다. 가위를 낼 때는 코를 움찔하고 바위일 때는 다리를 떠는 습관이 있는지 찾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투수와 타자 사이에는 쿠세를 감추거나 파악하려 애쓰고, 드러난 쿠세를 역이용하는 고도의 머리 싸움이 벌어진다.

국내 프로야구 삼성의 탄탄한 선발로 자리잡은 김진웅(21)은 올 시즌 들통났던 습관을 감추고 이를 역이용해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다. 김선수는 지난 4월 6일 대구 한화전에서 선발승을 올리며 상큼하게 출발했지만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네게임에 선발 등판했지만 1승도 못 올리고 2패를 기록했다. 4월 17일 두산전에서는 5회 동안 홈런 두 발을 맞고 5실점하는 난조를 보였다.

당시 김선수는 구단 기록원으로부터 습관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주무기인 포크볼을 던질 때 글러브 속에서 공을 끼우는 동작이 확연히 구별돼 타자가 포크볼에 대비한다는 것이었다.

그 후 김선수는 공을 잡는 부분이 넓고 여유가 있는 글러브로 바꿔 타자가 자신의 볼 배합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했다. 또 포크볼을 던지는 척하며 직구를 던지는 동작도 익혔다.

글러브를 바꾸고 지난달 31일 두산을 다시 만난 김선수는 시즌 첫 완봉승을 거뒀다. 글러브를 교체한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국내에서는 현대와 두산이 투수의 버릇을 잘 찾아내는 팀으로 꼽힌다.

박찬호(LA 다저스)는 한때 글러브를 끼는 손의 두번째 손가락(글러브 밖으로 나오는 손가락)의 위치가 직구와 변화구를 던질 때 다르다는 것이 노출됐다.

그래서 박선수는 두번째 손가락 덧씌우개가 있는 글러브를 사용하며 4~5경기마다 글러브를 바꾼다. 한 가지 글러브에 익숙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버릇이 생기고 타자도 그 점을 찾아낼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투수와 타자 사이에 오가는 머리 싸움을 '쿠세 따라잡기' 라고 할 수 있다. 야구팬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한 대목이다.

이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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