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지명의 無로 바라보기] 안팎을 같이 다듬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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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는 뚱보다. 음식 앞에서 사양하는 일이 없고 머리를 바닥에 대면 즉시 잠들어 버리는 태평형이다. 일생 내내 처음 만나는 이마다 나를 바보스럽게 여겨왔고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못생긴 사람이 무시를 당하는 것은 이상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영자 파동 이후 살찐 이가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퍼진 몸매 때문에 실제 정도 이상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한 주간지에 의하면 과거에는 미모를 주로 얼굴에서 찾았지만 요즘에는 몸 전체로 확대했다고 한다. 아무리 얼굴이 예뻐도 뚱뚱하면 '멍청한 돼지' 가 돼버린다. 몸무게는 신분상승과 반비례로 작용한다. 무거울수록 좋은 자리에 오르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여대생 10명 중 4명이 자신을 비만이라 생각하고, 많은 여학생이 과도하게 다이어트를 해서 포식증.거식증.빈혈.월경불순 등을 겪게 된단다. 지난 달에는 23세의 처녀가 다이어트를 하던 중에 죽었다. 살빼기 관련산업의 연간 매출총액이 2조원에 달하리라고 전문가들이 추산한단다.

*** 여대생 40%가 비만 걱정

외모 강박관념이 여자들만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우선 남자들이 가볍고 척척 휘어 감기는 여체를 좋아한다. 한 주부는 피나는 노력으로 16㎏의 살을 뺐지만 영양실조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기자가 그녀에게 계속해 절식을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요즘 남편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 라고 대답했다. 남편을 위해 건강을 해쳐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여성이 외모에 매달리는 것은 남성이 그렇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살빼기와 외모 집착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우리가 외모에 매달리면 더욱 외롭고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 20대가 넘자마자 시들어가기 시작하는 인생에서 나머지의 긴세월 전체가 매력 없는 것이 돼 버린다.

논밭이나 갯벌에서 일하느라고 피부가 거칠어진 여인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되고, 가족.직장, 또는 나라를 위해 일하느라고 주름지고, 머리가 빠지고, 검버섯이 핀 모습을 한 남자도 외롭게 된다.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사랑을 얻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입품이다. 마음속으로부터 스스로 우러나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 식탐 없애야 날씬한 몸매

육신의 수명은 짧다. 젊고 싱싱한 기간은 더욱 짧다. 늙고 병들지 않을 수가 없다. 젊을 때만 좋아하고 그리워하고 위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런 사랑을 좋아할 이는 많지 않으리라.

늙고 병들고 춥고 배고플 때도 한결같이 자신을 향해 다가올 수 있는 사람과 가까이 하려고 할 것이다. 상대의 외모가 아무리 좋아도 '제비' 나 '꽃뱀' 의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을 안다면 질겁하면서 멀리하려고 할 것이다. 몸매와 함께 그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마음가짐을 기대한다.

누구나 좋아할 덕성의 기본은 무엇일까. 이광수의 '육바라밀' 시에서처럼 부처님처럼 상대를 받드는 자세와 대중가요 '희망사항' 의 가사 내용이 생각난다. 헤세의 『싯달타』 소설에서처럼 "굶을 수 있고, 참을 수 있고, 꿈을 노래할 수 있는 상대" 도 떠오른다. 한마디로 상대를 위주로 하고 나 위주의 욕망을 뽑아내는 것이다.

외모를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육체 다듬기는 바로 식탐을 없애기에서 출발한다. "독하다" 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굳은 의지력을 갖고 "일단 취하고 보자" 는 욕망과 생활습관을 바로잡지 않으면 날씬한 몸매를 얻을 수 없다. 날씬한 이는 절제력이 강하다는 명찰을 가슴에 달고 있는 것과 같다.

텔레비전에 모델들이 직접 등장해 절식의 어려움에 대해 하소연한다. 몸매를 지키기 위해 한번도 마음 놓고 음식을 먹을 수 없단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 내키는 대로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에요" 라고 말한다.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모델과 배우들에게 있어 몸매 다듬는 일은 고행이요, 수행이다.

살빼기 고행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살 속의 지방을 뽑듯이 식탐의 업도 뽑아내야 한다. 필경에는 탐진치(貪瞋痴)라는 세가지 독(毒)을 완전히 뽑고 주변을 밝고 기쁘게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석지명 법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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