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의 엉뚱한 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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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귀에 익숙한 소설이나 영화의 상당수는 전쟁을 배경으로 스토리가 펼쳐진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리고 국내 작품으로 『태백산맥』 『실미도』 『하얀 전쟁』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작품이 모두 전쟁의 참혹함에서 소재를 찾아 만들어졌다.

곽대희의 性칼럼

그런데 전쟁은 기운이 펄펄한 젊은이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밀리는 싸움이므로 그 구성원들이 대부분 총각이거나 한시적 독신자들이고, 그래서 성적 충동이 늘 충천해 있다.‘디어 헌터’라는 전쟁영화는 현역군인이 아니라 입대를 앞두고 제철소에서 일하는 근로자 친구들이 총각파티를 열어주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총각파티는 동정 상태로 아내를 맞는 것은 성생활의 시작부터 시행착오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사전에 연습하면서 숙달되는 것과 동시에 심리적 안정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미국 사회에서 섹스 행사로 굳어졌다. 일찍부터 피임술이 발달해 성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진 유럽인들이 만든 하나의 새로운 성풍속인 총각파티는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퍼진 상태다.

우리나라도 총각딱지를 떼는 것을 어른이 되었다는 상징으로 인식하는 특별한 집단의 성문화가 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병영문화다. 그래서 부대원 가운데 총각이 있으면 한사코 그 딱지를 떼려고 발버둥친다. 이 이상한 관습은 일본 관동군에게서 전래된 것이라고 듣고 있다.

이렇게 총각들의 초야가 논쟁거리가 된 것이 구시대적 발상이라면, 여자의 초야권도 얌전히 고수하지 못했던 것이 우리들 휴먼 소사이어티다. 남성들의 총각파티와 여성들의 초야권은 순결이 요구되는 결혼에서 일부러 동정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점이 없지 않다.

1538년 스위스 취리히 주 의회가 작성한 포고문을 보면 아래와 같은 규정이 있다. ‘농지를 소유한 영주는 영지 내의 소작인 농민이 결혼하게 될 때 그 신부와 첫날밤을 지낼 권리가 있으며, 신랑은 영주에게 신부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만약 이 명령을 어겼을 때는 신랑은 영주에게 4마르크 30페니의 과징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 문서가 의미하는 바는 영주에게 있어서 젊은 소작인들은 힘든 농사일을 거드는 농노인 동시에 가축이나 농작물과 다름없는 사유재산으로 간주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이웃나라 독일의 사정도 별로 다를 바 없었다. 지금은 BMW 자동차 공장이 소재한 독일의 바이에른 지방에서 이 초야권을 면제받기 위해서 신부는 ‘그녀의 히프가 넉넉히 들어 갈 만한 크기의 가마솥’이나 ‘그 둔부 중량만큼의 치즈’를 공물로 바치고, 신랑은 영주를 위해 모직 재킷이나 담요를 상납해야 했다.

반대로 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는 당국으로부터 결혼 승인이 나지 않았으며 구금이나 태형 같은 벌칙이 부과됐다. 지배자가 억지로 만든 ‘결혼세’ 같은 것이었는데, 독일 같은 주변 국가들의 통치 방식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게 변해 갔다. 문헌을 통한 연구 분석에 따르면 영주에게 소작인의 딸들은 ‘화대가 필요 없는 창녀’나 다름없었으며 사실상 ‘불특정 다수의 첩’이었다.

그 대표적 사례가 샤를마뉴 대제 치하 프랑스 영주들의 횡포였다. 영주의 초야권 행사를 모든 신부가 한결같이 혐오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처녀는 귀족과 동침한 후 ‘주인이 개의 등을 긁어주었을 때처럼 황홀한 느낌’이었다고 술회하는 글을 역사적 기록의 한 조각으로 이 세상에 남겼다.

그리고 처녀가 초야권 행사에서 처녀성을 입증하는 출혈을 보이는 경우 영주는 처녀의 가족에게 조촐한 행복을 약속했다. 그것은 부모의 부역 경감과 포상금이었다.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이코노미스트 9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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