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일기] 7년전 가뭄대책 어디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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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이웃들은 정이 많다. 가뭄성금 모금을 위한 TV 생방송을 보며 초등학생이 돼지 저금통을 헐어 성금을 내고, 온 가족이 자동응답전화를 돌리는 집도 한두곳이 아니다. 이번 가뭄이 심각하리라는 예보가 나온 게 어제 오늘이 아니다.

농사 현장에선 일찍부터 봄 가뭄을 걱정해왔다. 그런데 모내기가 시작된 5월까지도 정부는 '비만 오면 해결될 문제' 라고 되뇌다가 결국 또다시 성금 모으기 등 국민의 힘을 빌리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일요일인 10일 국무총리 주재로 긴급 당정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논의된 대책은 공무원 총동원령에 예산을 더 투입하는 정도다. 그나마 이런 대책도 너무 늦었다. 예산을 추가 지원한다지만 그 자금이 농민에게 전달되려면 아직 멀었고, 지금도 논과 밭은 타들어가고 있다. 뒤늦게 양수기를 보내고 전기료를 인하한다지만 말라붙은 논과 벼는 대답이 없다.

우리는 7년 전인 1994년에도 혹독한 가뭄을 겪었다. 당시에도 지하수를 개발(관정)하고 제한 급수를 하는 등 급박했으며, 여러가지 비상대책이 강구됐다. 그러나 고비를 넘겨 비가 내리자 대책이 유야무야됐다.

최근 댐 건설 계획이 벽에 부닥치는 등 물관리 대책 시행이 어려워지자 일부 전문가는 94년 당시 며칠 더 비가 오지 않았어야 물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경기 북부 지역의 가뭄 피해가 심각한데, 이곳은 벌써 몇년째 홍수 피해가 심했던 곳이다. 이곳의 피해가 심한 것은 결국 정부의 물관리 대책이 상황에 따라 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홍수로 부서진 연천댐을 헐어내지 않고 보수해 썼다면 이번 가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철거를 요구한 주민들의 책임도 있지만 철거 결정을 내린 정부의 무소신 정책에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

경기도 동두천시 주민의 이같은 지적을 정부는 귀담아 들어야 한다.

요즘 거론되는 대책 가운데 상당수가 이미 7년 전에 채택됐던 것이다. 이러다가 비가 내리면 또다시 전부 잊어버릴지 모른다. 도대체 왜 우리는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닥치면 호들갑을 떠는가.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좀 하자.

차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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