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乘風破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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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중국 남북조 시대(420~589) 때 송(宋)나라에 종각(宗慤)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앉아 책 읽기보다는 무예를 좋아했고, 논어·맹자보다는 병서에 탐닉했다. 어느 날 그의 삼촌(宗炳)이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되려고 그러느냐?”고 질책하듯 물었다. 종각이 답하길 “장풍을 타고 만리 물결을 헤쳐나가려 합니다(願乘長風破萬里浪)”라 했다.

과연 그랬다. 종각은 남오(南奧, 지금의 베트남)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하자 참전하게 된다. 그는 코끼리를 앞세워 공격하는 적을 사자상(像)으로 현혹시킨 뒤 공격을 가했다. 기상천외한 그의 전술에 힘입어 반란군은 제압됐고, 그는 ‘진무(振武)’장군으로 임명된다. 이후 종각은 여러 전쟁에 나가 전공을 세웠고, 제후에까지 올랐다. 어릴 적 호언장담이 실현된 것이다. ‘송사 종각전(宋史·宗慤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 바로 ‘승풍파랑(乘風破浪)’이다. 국어사전에는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하여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나아감’이라고 뜻을 풀이하고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올해 경영 화두라 해서 회자(膾炙)된 성어이기도 하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피형참극(披荊斬棘)’이 있다. 역시 전쟁과 관련이 있는 성어다.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BC 6년~AD 57년)의 신하 중에 빙이(憑異)라는 장수가 있었다. 낙양에서 건국한 광무제는 빙이에게 관중(지금의 西安) 땅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빙이는 그러나 가시나무 덤불을 뚫고(披荊), 베면서(斬棘) 진군했다. 광무제는 전장에서 돌아온 빙이 장군에게 “그대야말로 가시덤불을 헤치고, 온갖 장애를 극복해 승리한 나의 장수”라며 큰 상을 내렸다고 ‘후한서 빙이전(後漢書·憑異傳)’은 전하고 있다.

같은 뜻으로 고가맹진(高歌猛進)이라는 말도 있다. 군가를 높이 불러가며 앞으로 나간다는 뜻이다. 세 가지 성어 모두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강조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로 서해에 격랑의 파도가 높아지고 있다. 저 거친 물결을 헤쳐나갈 국민적 슬기와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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