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금 두둑… 보너스로 25년간 공짜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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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쓴 흑맥주를 크림처럼 부드러운 거품으로 덮고 있는 아일랜드의 전통 맥주 '기네스' .이 술이 노사분규까지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이 맥주를 만드는 기네스사는 올해 초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아일랜드 북부 던돌크의 공장을 폐쇄키로 했다. 대량 해고는 당연히 예측되는 일이었고 곧바로 노사분규도 시작됐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노사 양측은 한마음으로 문 닫는 공장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할 수 있었다. 두달간 지속된 분규가 극적으로 타결된 것이었다.

회사측은 우선 1백50명의 해고 근로자에게 1인당 약 1억7천만원까지 퇴직금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또 퇴직자들의 자녀들에게 학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퇴직금과 장학금을 합하면 모두2백50억원 규모였다.

그러나 노조는 선뜻 이 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난달 중순 수일 동안 전면파업에 들어갈 정도로 그동안 회사측과 마찰을 빚었고 노조 집행부의 감정도 격앙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 회사는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앞으로 수년 동안 해직자들이 기네스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맥주 쿠폰을 제공하겠다" 는 것이었다.

노조측은 순간 웃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회사측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퇴직금과 장학금에 비하면 얼마 안되는 혜택이지만 회사측의 배려가 담겨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노조위원장인 존 킹은 "길게는 25년 동안 회사를 위해 일해온 동료들이 마음 편히 기네스 맥주를 다시 마실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움직였다" 고 말했다. 헤어져도 서로 원망은 하지 않도록 하는 미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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