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 기자의 오토 살롱/스바루] 2차대전 때 전투기 엔진 만들다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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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스바루의 사륜구동 SUV 포레스터.

일본 후지중공업이 만드는 스바루는 남들이 손대지 않는 독특한 분야의 기술로 생존해 온 자동차 브랜드다.

우선 사륜(四輪) 구동이다. 스바루에서 만드는 차는 경차를 빼고는 승용차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건 모두 네 바퀴 굴림이다.

여기에 세계 자동차 업체 가운데 포르셰와 더불어 수평대향 엔진을 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엔진의 피스톤들이 수직이나 V자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과 달리 피스톤이 좌우로 마주보면서 수평으로 움직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특히 피스톤의 움직임이 권투선수가 주먹을 내미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복서(Boxer) 엔진’으로도 불린다.

이 엔진은 피스톤의 진동을 상쇄해 정숙성과 연비가 뛰어난 데다 차체 무게중심이 낮아 핸들링이 좋다. 대신 생산이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처럼 기술에 대한 고집이 강해 스바루는 매니어층이 두텁다.

여섯 개의 별 모양이 특징인 로고는 1953년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생겨났다. ‘스바루’는 황소자리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후지중공업의 역사는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군부의 사업을 도맡아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주력 전투기였던 ‘제로센’의 엔진을 제작했다. 이 전투기 엔진이 수평대향이다. 당시 제로센은 연비가 뛰어나 미군의 머스탱 전투기보다 항속거리가 20% 이상 더 나왔다. 종전 후 미국이 항공기 사업을 봉쇄하자 58년 자동차회사로 변신했다.

경차인 ‘스바루 360’을 생산한 게 시초다. 차체 구조는 비행기 제작 때 사용하는 모노코크(뼈대를 얽어 만든 구조) 방식을 채택했으며, 무게를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 부품을 사용했다. 실내공간이 널찍한 데다 가벼워 연비가 좋았다. 귀여운 외모에 저렴한 가격까지 맞아떨어져 ‘마이 카’ 붐을 타고 대박이 났다.

스바루는 10년 전 한국과 인연의 끈이 닿을 뻔했다. 스바루는 연간 판매가 60만 대 정도로 규모가 작아 항상 외부 업체와 제휴했다. 2000년 닛산이 어려워지면서 닛산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 20%가 매물로 나왔다. 현대차가 입질했다. 사륜구동 기술이 탐나서다. 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현대차가 신기술에 주력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지만 속내는 한국 회사라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결국 지분은 GM에 넘어갔다가 2008년 도요타가 다시 사들였다.

다음달 말이면 스바루가 한국 판매를 시작한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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