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의 대북 강성정책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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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제 미국에서 끝난 한.미.일 3자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 회의에서 미국이 제시한 대북정책의 방향은 너무 경직적이며 강성이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곧 확정될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은 북.미 대화 재개를 전제로 핵.미사일 등 비확산 문제의 최우선 해결과 철저한 단계별 검증을 원칙으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페리 보고서에 기초했던 클린턴 전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사실상 방기(放棄)한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특히 부시 정부가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 전임 정부의 협상 성과를 반영치 않고 원점부터 협상하되 단계별로 협상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을 시사한 것은 국제 관계의 룰에서 벗어난 미국의 오만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대화가 재개되더라도 북.미 양쪽은 처음부터 사사건건 맞서기 십상이다. 미국은 제네바 합의에 따른 북한의 과거 핵 의혹 규명을 우선적으로 고집할 것이고, 북한은 과거 핵 사찰의 전제는 제네바 합의의 성실한 이행에 있다고 반발할 것이 뻔하다.

이런 측면에선 경수로 건설의 진척이 합의서의 일정보다 훨씬 더디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생산적 협상보다 기세 싸움만 춤추는 꼴이 돼 한반도 정세는 불안정으로 흐를 개연성이 높아질 것이다.

미국은 이 과정에서 경수로 건설보다는 화전(火電)건설의 대안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어 또 다른 분란을 촉발할지 모른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에 미사일 발사 및 판매 중지, 재래식 무기의 감축까지 요구할 방침이어서 북한의 입지가 매우 좁아지게 될 것이다.

북한을 벼랑 끝으로 유인하는 이같은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는 안정화 방향으로 진전되던 한반도 정세를 지난날의 불가측적 상황으로 다시 내몰게 될 것이다. 북.미간 협상이 교착되면 남북간 대화도 악영향을 받게 돼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미국의 정책이 오히려 불안정의 원천이 된다는 현실과 비판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대북 강성정책의 확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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