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무리한 이라크 선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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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국인 목사 등 5명이 지난달 29일 선교 활동을 위해 이라크에 무단입국했다가 헛걸음치고 2일 오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택시를 타고 입국비자 없이 이라크 국경을 넘어 모술 시내로 들어갔다. 그러나 친분 있던 현지인 목회자로부터 싸늘한 경고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당신들은 물론 모술 내의 기독교인들과 교회에 피해가 올 수 있다" "한국인이 온다는 정보가 테러세력들에 널리 퍼져 있다. 택시에서 한 발짝도 내리지 말고 돌아가라." 이 말은 현 단계에서 이라크 내 선교활동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 대한 분노와 좌절에 빠져 있는 이라크 이슬람 과격세력들은 올 들어 기독교인들을 계속 공격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기회만 되면 이라크를 빠져 나가려 한다. 10년 전 140만여명이던 이라크 기독교인 인구는 현재 70만여명까지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선교사들은 이슬람 과격세력의 표적이 되고 있다. 중동에서 한국은'친미 국가'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이라크에 전투부대를 파견한 이후 반한 감정도 많아졌다. 지난 6월 김선일씨를 살해한 '일신과 성전'도 자체 홈페이지에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죽였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종교적 신념을 위해선 목숨도 아깝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에 귀국한 5명은 '우리가 죽으면 시신을 실험용으로 써달라'고 적힌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황을 무시한 무리한 선교는 개인은 물론 국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외국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 타임스(NYT) 인터넷판은 지난 1일 "한국인들의 중동 선교가 너무 공격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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